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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송산리 유적(曾坪 松山里遺蹟)}}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송산리 유적 | 이칭별칭=증평 송산리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충청북도 증평군 증평읍 송산리 74-5 일원 | 성격=복합유적 | 키워드=[[가락동 유형]], [[야외 화덕 자리]], [[집자리]], [[도랑]], [[돌 깐 돌 두름식 화덕 자리]], [[구덩식 화덕 자리]], [[목탄]], [[저장 구덩이]], [[소성 유구]]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최범식 }} ==설명== 충청북도 증평군 증평읍 송산리 74-5 일원에 위치한다. 2008년 증평 송산 지구 주택 단지 조성 사업의 일환으로 발굴 조사하여 [[신석기시대|신석기 시대]] [[야외노지|야외 화덕 자리]] 3기,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 [[집자리|집자리]] 2기, [[소성유구|소성 유구]] 1기, 근대 [[구|도랑]] 4기를 확인하였다. 유적은 증평 읍내로부터 북쪽으로 800m 떨어진 보강천 변에 해당한다. 안자산의 남쪽 보강천 변의 하상퇴적으로 형성된 저평한 충적 대지이며 발굴 조사 이전에는 논으로 이용되던 해발 50m 내외의 지역이다. 1호 집자리는 길이 5.2m, 너비 4.9m의 평면 방형이다. 내부 시설로는 중앙에 [[판돌|판돌(板石)]] 2매를 깔고 주위에 [[깬돌|깬돌(割石)]]을 두른 유사 [[돌깐돌두름식화덕자리|돌 깐 돌 두름식 화덕 자리(石床圍石式爐址)]] 1기와 [[저장구덩이|저장 구덩이]] 5기가 있다. 유물은 [[그물추|그물추]] 6점, [[겹아가리토기발|겹아가리 토기 발(二重口緣土器鉢)]] 1점이 출토되었다. 집자리 내부 벽면을 따라 고르게 [[목탄|목탄]]이 확인되는 데 가장 긴 것이 120㎝로 기둥이나 보 같은 건축 부재가 화재로 인해 쓰러진 것으로 추정된다. 2호 집자리는 평면 방형이며 길이 7m, 너비 5.5m이다. 집자리 안에는 [[구덩식화덕자리|구덩식 화덕 자리]] 1기가 중앙에 시설되어 있고, 평균 지름 0.15m의 [[기둥구멍|기둥 구멍]]이 벽면을 따라 4기가 확인된다. 출토 유물로는 [[겹아가리토기|겹아가리 토기(二重口緣土器)]] 1점, 토제 [[가락바퀴|가락바퀴(紡錘車)]] 1점, 석제 가락바퀴 1점이 있다. 목탄은 남서쪽 벽면을 제외한 모든 벽면에서 고르게 확인되었다. 두 집자리에서 출토된 목탄에 대한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 3230±50~2910±50 BP로 도출되었으며 보정 연대는 기원전 1520~1120년에 해당한다. 송산리 유적 집자리는 [[가락동유형|가락동 유형]]에 해당하지만, [[돌두름식화덕자리|돌 두름식 화덕 자리(圍石式爐址)]]나 [[초석|주춧돌(礎石)]]이 존재하지 않아 전형적인 가락동 유형 집자리와는 차이가 있어 주목된다. 또한, 증평 지역에서 그동안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았던 신석기~청동기 시대 문화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조사정보== {|class="listtable" ! class="col-type"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발굴조사 || 2008년 || 증평 송산리 유적 || 2010 || 한국선사문화연구원 |}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유적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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