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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소토리 유적(梁山 所土里遺蹟)}}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소토리 유적 | 이칭별칭=양산 소토리 유적, 양산 소토리 소노 고인돌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소토리 437·437-1 | 성격=복합유적 | 키워드=[[집자리]], [[돌널무덤]], [[돌뚜껑움무덤]], [[기둥 건물터]], [[구덩이]], [[고인돌]], [[움무덤]], [[화덕 자리]], [[송국리식 집자리]], [[민무늬 토기]], [[홈 자루 간 돌검]], [[통자루 간 돌검]], [[슴베 간 돌살촉]], [[붉은 간 토기]], [[간 돌검]]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배진성 }} ==설명==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소토리 437·437-1에 위치한다. 경부 고속 도로(부산-언양 간) 확장 공사로 2003년 경남고고학연구소(소토리 유적)가 조사하여, [[집자리|집자리]] 17기, [[돌널무덤|돌널무덤]] 11기, [[돌뚜껑움무덤|돌뚜껑움무덤(石蓋土壙墓)]] 9기, [[기둥건물터|기둥 건물터(高床建物址)]] 2기, [[구덩이|구덩이]] 15기를 확인하였다. 이후 자동차 정비 공장 건립으로 2011년 한겨레문화재연구원이 조사하여(소토리 소노 고인돌), 집자리 2기, [[고인돌|고인돌]] 1기, 돌뚜껑움무덤 1기, [[움무덤|움무덤(土壙墓)]] 1기, 돌널무덤 9기를 확인하였다. 유적은 해발 37m 내외의 저지성 구릉에 입지하며, 서쪽에는 양산천이 흐르고 남쪽에는 양산천으로 유입되는 소하천이 있다. 집자리는 장방형과 타원형으로 구릉 정상부와 사면이 입지한다. 장방형은 바닥의 중앙 또는 벽 쪽으로 약간 치우쳐 길이 0.6m의 원형 [[화덕자리|화덕 자리]]가 위치한다. 타원형은 바닥의 중앙에 길이 0.8~1m의 타원형 구덩이와 그 양단 바깥에 기둥 구멍을 각각 설치한 [[송국리식집자리|송국리식 집자리]]이다. 출토 유물은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 편이나 석재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깬돌(割石)이 대부분이다. 무덤은 예전부터 소노 고인돌로 불리어 온 [[덮개돌|덮개돌(上石)]]에 대한 조사 결과 [[무덤방|무덤방(墓室)]]은 없었다. 덮개돌에서 서쪽으로 2m 떨어져 도굴 구덩이가 있는 7호 무덤이 고인돌의 무덤방으로 추정되며, 덮개돌은 후대에 이동된 것으로 판단된다. 돌널무덤은 규모가 비교적 큰 것은 깬돌(割石), 작은 것은 판돌(板石)로 축조되었다. 소노 고인돌 유적 4호는 깬돌로 축조한 벽석 안쪽에 다시 판돌을 세워서 내관(內棺)을 마련하였다. 바닥에는 길이 5㎝ 내외의 깬돌을 바닥 전체 또는 주검(屍身)이 안치되는 부분에만 깔아 놓았다. 그리고 벽석의 종류와 세운 방식에 따라 [[송국리식돌널|송국리식 돌널]]과 [[상자형돌널|상자형(箱形) 돌널]]로 구분되는데, 송국리식 돌널은 세 벽에 장방형의 판돌을 세웠고 나머지 한 벽은 깬돌을 쌓았다. 상자형 돌널은 방형의 판돌을 이용하여 벽석을 세웠으며, 전체적으로 소형이다. 무덤 구덩이와 돌널 사이에는 구덩이를 파면서 나온 흙을 되채움 하였다. 돌뚜껑움무덤은 대부분 길고 좁게 [[묘광|무덤 구덩이(墓壙)]]를 판 후 장방형의 [[뚜껑돌|뚜껑돌(蓋石)]]을 덮었는데 머리 쪽이 넓고 발쪽이 좁다. 무덤방의 구조는 뚜껑돌 위에 깬돌로 돌무지를 쌓은 것積石, 바닥에 [[주검받침돌|주검 받침돌(屍床石)]]을 깔아 놓은 것, 짧은 벽 쪽에 ‘ㄴ’자로 판돌을 세워 부장 공간(副葬空間)를 만든 것, 구덩이의 가장자리에 납작한 강돌을 돌려 놓은 것 등 다양하다. 움무덤에는 통나무널(소노 지석묘 유적 1호) 및 나무 뚜껑(木蓋)이 있었을(소노 지석묘 유적 5호) 것으로 추정된다. 유물은 바닥에서 [[홈자루간돌검|홈 자루 간 돌검(二段柄式磨製石劍)]], [[통자루간돌검|통자루 간 돌검(一段柄式磨製石劍)]], [[슴베간돌살촉|슴베 간 돌살촉(有莖式石鏃)]], [[붉은간토기|붉은 간 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석기는 대부분 한쪽 긴 벽에 치우쳐 있었는데, [[간돌검|간 돌검]]은 무릎이나 허리 부위에 놓였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비해 토기는 주로 짧은 벽 쪽에서 확인되는데, 깬돌로 마련된 [[껴묻거리|부장품]] 칸에서 출토되기도 하고 나무널(木棺)나 나무 뚜껑 위에 놓았던 것이 내부로 떨어진 것으로 추정되는(1·5호) 사례도 있다. 유적의 집자리와 무덤은 모두 [[송국리문화|송국리 문화]] 단계에 해당한다. 집자리는 구릉의 정상부와 사면에, 무덤은 구릉의 정상부를 중심으로 위치하는 특징이 있다. 일부 무덤은 집자리를 파괴하고 축조되었으나 시기 차이는 크지 않다. ==조사정보== {|class="listtable" ! class="col-type"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발굴조사 || 2003년 6월 4일~2003년 12월 29일 || 양산 소토리 송국리문화집락 || 2005 || 경남고고학연구소 |- | 발굴조사 || 2011년 || 양산 소토리 소노 지석묘 유적 || 2013 || 한겨레문화재연구원 |}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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