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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석상리 고인돌군[扶安 石上里支石墓群]}}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석상리 고인돌군 | 이칭별칭=부안 석상리 고인돌군, 구암리 고인돌군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하서면 석상리 707-1 일원 | 성격=고인돌 | 키워드=[[바둑판식 고인돌]], [[다지석식 고인돌]]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이동희 }} ==설명== 사적 부안 구암리 지석묘군. 전라북도 부안군 하서면 석상리 707-1 일원에 위치한다. 1956년 조사되었으며, 1963년 1월 21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조사 당시에는 13기가 있었다고 보고되었으나 이후 10기만 남아 있다. 고인돌에 대한 정확한 실측 조사 및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한 현황과 내부 구조는 알 수 없다. 10기의 [[고인돌|고인돌]] 은 [[기반식고인돌|바둑판식]] 의 형태이다. 가장 큰 고인돌은 [[덮개돌|덮개돌(上石)]] 의 장축 방향이 정남북을 보이며 길이 6.35m, 너비 4.5m, 두께 0.8m로 국내 최대 규모의 바둑판식 고인돌(基盤式支石墓)에 속한다. 받침돌은 높이 0.7~1m, 너비 0.3~0.7m이며, 8개가 받쳐져 있는 형태이다. 받침돌이 8개인 [[다지석식고인돌|다지석식(多支石式)]] 은 드문 형태로 구암리 고인돌의 특징이다. 그밖에 다른 고인돌은 덮개돌은 길이 1.2~6.3m, 너비 1~3.8m이며, 4개의 받침돌이 받쳐져 있다. 전체적으로 내부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출토 유물은 없다. ==지정정보== {|class="listtable" ! 구분 !! 지정 종목 !! 지정 명칭 !! 자세히 보기 |- | 국가유산 || 사적 || 부안 구암리 지석묘군 (扶安 龜岩里 支石墓群) || <span class="plainlinks">[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1333501030000 🔗]</span> |}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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