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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삼정리 유적(浦項 三政里遺蹟)}}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삼정리 유적 | 이칭별칭=포항 삼정리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경상북도 포항시 구룡포읍 삼정리 276·515 일원 | 성격=복합유적 | 키워드=[[집자리]], [[움무덤]], [[구덩이]], [[도랑]], [[돌더미]], [[구멍무늬 토기]], [[골아가리 토기]], [[겹아가리 토기]], [[굽다리 토기]], [[붉은 간 토기]], [[가락바퀴]], [[민무늬 토기]], [[흔암리 유형]]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배군열 }} ==설명== 경상북도 포항시 구룡포읍 삼정리 276·515 일원에 위치한다. 포항 구룡포-대보 간 도로 확장 공사로 2004~2005년 조사하여, 삼정1리 유적(삼정리 515)에 서 [[집자리|집자리]] 59기, [[움무덤|움무덤(土壙墓)]] 1기, [[구덩이|구덩이]] 7기, [[구|도랑(溝)]] 3기, [[돌더미|돌더미(集石)]] 1기, 삼정2리 유적(삼정리 276)에서 집자리 9기, 도랑 1기를 확인하였다. 두 유적은 응암산(해발 158.5m)에서 동쪽으로 뻗은 구릉의 말단부에 입지하며, 계곡을 사이에 두고 위치하며 약 700m 거리에 위치한다. 삼정1리 유적의 집자리는 3개의 군집을 이루며 남동쪽, 중앙, 북동쪽 사면부에 밀집 조성되었다. 집자리 간의 중복 양상은 빈번하게 확인된다. 형태에 따라 방형 31기, 장방형 4기이며, 9호는 길이 9.36m, 너비 5.24m로 가장 크다. 면적은 6.1~49㎡로, 중소형인 15~20㎡에 해당하는 집자리가 10기로 가장 많다. 내부 시설로는 [[기둥구멍|기둥 구멍]], [[화덕자리|화덕 자리]], [[벽도랑|벽 도랑(壁溝)]], [[저장구덩이|저장 구덩이]]가 확인된다. 기둥 구멍은 4·6·8·10주식(柱式)이 확인되었다. 기둥 구멍의 배치가 정형성 없거나 33호 같이 기둥 구멍이 없는 예도 있다. 화덕 자리는 48기에서 확인되며, 복수인 것이 11기이다. 대부분 원형 또는 타원형의 구덩식으로 한쪽 짧은 벽에 치우쳐 위치한다. 11·12호는 [[돌두름식|돌 두름식(圍石式)]]으로 집자리 중앙에 위치한다. 벽 도랑은 53기에서 ‘ㄱ’, ‘ㄷ’, ‘ㅁ’, ‘ㅡ’자 모양으로 다양하며, ‘ㄱ’, ‘ㄷ’자 모양이 다수이다. 28·59호는 내부에 도랑이 설치되어 공간을 분리한 것으로 판단된다. 벽 도랑에서 집자리 외부로 배수(排水)하는 기능을 한 [[외부돌출구|외부 돌출구(外部突出溝)]]는 대부분 구덩식이지만, 3·10호는 석조식(石造式)으로 덮개돌이 남아 있다. 저장 구덩이는 주로 모서리에 설치되며, 원형 또는 타원형이며 길이 0.15~0.56m이다. 3호에서는 구덩이 내에서 [[그물추|그물추]]가 출토되었고, 35호에서는 소형 [[깬돌|깬돌(割石)]] 편들이 채워져 있었다. 바닥은 대부분 맨땅을 그대로 사용하였으나, 25호는 점토 다짐, 21호는 불다짐 처리하였다. 집자리의 폐기 양상은 자연적으로 폐기되거나, 화재로 폐기된 것이 비슷한 비율로 확인되며, 19·41호는 돌더미 폐기가 확인되었다. 유물은 [[구멍무늬토기|구멍무늬 토기(孔列土器)]], [[골아가리토기|골아가리 토기(口脣刻目土器)]], [[겹아가리토기|겹아가리 토기]], [[짧은빗금무늬토기|짧은 빗금무늬 토기]], [[골아가리구멍무늬토기|골아가리 구멍무늬 토기(口脣刻目孔列文土器)]], [[겹아가리짧은빗금구멍무늬토기(二重口緣孔列短斜線孔列文土器)|겹아가리 짧은 빗금 구멍무늬 토기]], [[겹아가리짧은빗금구멍무늬토기(二重口緣孔列短斜線孔列文土器)|겹아가리 짧은 빗금 구멍무늬 토기]], [[겹아가리짧은빗금무늬골아가리토기|겹아가리짧은빗금무늬골아가리토기(二重口緣短斜線口脣刻目文土器)]], [[얕은바리모양토기|얕은 바리 토기(淺鉢形土器)]], [[항아리모양토기|항아리 모양 토기(壺形土器)]], [[굽다리토기|굽다리 토기(高杯形土器)]], [[붉은간토기|붉은 간 토기]], 그물추, [[가락바퀴|가락바퀴]], [[버들잎모양돌살촉|버들잎 모양 돌살촉(柳葉式石鏃)]], [[슴베돌살촉|슴베 돌살촉(有莖式石鏃)]], [[마디자루간돌검|마디 자루 간 돌검(有節式磨製石劍)]], [[합인석부|조갯날 돌도끼(蛤刃石斧)]], [[돌대팻날|돌대팻날(扁平片刃石斧)]], [[돌대팻날|돌대팻날(扁平片刃石斧)]], [[갈판|갈판(碾石)]], [[갈판|갈판(碾石)]]가 출토되었다. 구덩이는 사면을 따라 3개의 군집을 보이며, 각 군집은 집자리군와 거리를 두며 대칭적으로 위치하여, 저장의 기능을 하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규모는 길이 1.17~5.2m, 너비 0.85~4.45m, 깊이 0.16~0.42m이며, 내부에서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와 각종 석기가 출토되었다. 움무덤은 남서쪽 구릉 사면부에 위치하며, [[묘광|무덤 구덩이]]는 길이 1.85m, 너비 1.03m, 깊이 0.4m이다. 유물은 붉은 간 토기 2점과 가락바퀴 1점이 출토되었다. 삼정2리 유적의 집자리는 3개의 군집을 이루며 남동쪽, 중앙, 북서쪽 사면부에 조성되었다. 형태는 대부분 유실되어 알 수 없으며, 면적은 17~20㎡이다. 내부 시설로는 기둥 구멍, 화덕 자리, 벽 도랑, 저장 구덩이가 확인된다. 기둥 구멍은 바닥면에서 확인되나 정형성은 없다. 화덕 자리는 원형 또는 타원형의 구덩식으로 1·9호는 한쪽 짧은 벽, 8호는 중앙에 위치한다. 벽 도랑은 5호를 제외하고 모두 확인되며, ‘ㄱ’자, ‘ㄷ’자, ‘ㅁ’자 모양이다. 외부 돌출구는 6호에서 경사가 낮은 모서리 부분에 축조되었다. 2호에서는 공간 분할의 기능을 한 내부 도랑이 확인된다. 바닥은 맨땅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폐기는 자연적으로 폐기된 양상과 화재로 폐기된 양상이 비슷한 비율로 확인된다. 유물은 구멍무늬 토기, 골아가리 구멍무늬 토기, 붉은 간 토기, 슴베 돌살촉, 마디 자루 간 돌검, [[돌도끼|돌도끼(石斧)]], [[돌끌|돌끌(石鑿)]], 갈판, [[갈돌|갈돌]]이 출토되었다. 유적의 연대는 집자리 평면 형태 및 구조, 내부 출토 유물을 통해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 이른 시기로 판단되며, 동해안에 조성된 대규모의 [[흔암리유형|흔암리 유형]] [[취락|취락]]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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