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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부수리 유적(報恩 富壽里遺蹟)}}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부수리 유적 | 이칭별칭=보은 부수리 유적, 보은 부수리 고분군, 보은 부수리 돌널무덤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충청북도 보은군 회인면 부수리 145 일원 | 성격=고분 | 키워드=[[돌널무덤]], [[송국리 유형]], [[통슴베 간 돌살촉]]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박주영 }} ==설명== 충청북도 보은군 회인면 부수리 145 일원에 위치한다. 2003년 청원-상주간 고속 도로 건설 구간에 대한 발굴 조사가 진행되었다. 청동기~조선 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형식의 무덤을 조사하여 ‘고분군(古墳群)’으로 보고되었다.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 유구로는 [[돌널무덤|돌널무덤(石棺墓)]] 1기가 있다. 1호 돌널무덤은 해발이 144m인 능선 최정상부의 비교적 평탄한 지형에 능선 방향과 반대인 남북 방향으로 축조되었다. 돌널의 규모는 길이 1.76m, 너비 0.7m, 깊이 0.44m이다. 벽석은 2~3㎝ 두께의 점판암 [[판돌|판돌(板石)]] 3~4매를 세워 쌓기(垂積)하였다. 특이한 점은 돌널무덤 내부를 1차와 2차로 나누어 사용하였다는 점이다. 1차의 바닥면은 얇고 평평한 5매의 석재를 이용하여 정연하게 깔았으며, 2차는 1차 바닥면에서 20㎝ 위에 존재하나 상대적으로 석재를 깐 상태가 불량하며 규모는 길이 1.4m, 너비 0.5m이다. 사람 뼈가 발견되어 매장자에 대한 정보를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데, 1차로 매장된 사람 뼈는 머리 뼈를 통해 성인으로 추정되며 침향은 남향이다. 일정 시간이 흘러 2차로 매장된 사람 뼈는 허벅지 뼈, 정강이 뼈를 통해 10세 전후의 소아가 매장된 것으로 보인다. 유물은 1차 바닥면에서 [[붉은간토기|붉은 간 토기]] 1점과 [[돌살촉|돌살촉(石鏃)]] 8점이 출토되어 성인의 매장 시 부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통슴베간돌살촉|통슴베 간 돌살촉(一段莖式石鏃)]]으로 모든 몸통(鏃身)의 단면이 마름모꼴이지만 뿌리의 형태는 평편한 것과 뾰족한 것 두 종류가 있다. 돌널의 형태와 출토 유물을 통해 [[보은상가리.우진리유적|보은 상가리 유적]]의 [[송국리식집자리|송국리식 집자리]], 돌널무덤과 같이 [[송국리유형|송국리 유형]]이 이 지역에 전파된 예로 볼 수 있다. 또한, 시간을 두고 매장된 성인과 소아의 관계나 당시의 매장의례를 알 수 있는 자료이다. ==조사정보== {|class="listtable" ! class="col-type"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발굴조사 || 2003년 || 보은 부수리 고분군 || 2004 || 중앙문화재연구원 |- | 발굴조사 || 2003년 || 보은 부수리 고분군 || 2004 || 중앙문화재연구원 |}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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