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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봉북리 유적(求禮 鳳北里遺蹟)}}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봉북리 유적 | 이칭별칭=구례 봉북리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전라남도 구례군 구례읍 봉북리 1423-1 일원 | 성격=복합유적 | 키워드=[[고인돌]], [[민무늬 토기]], [[구멍무늬 토기]], [[바리 토기]], [[간 돌살촉]], [[홈자귀]], [[양날 돌도끼]]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최성훈 }} ==설명== 전라남도 구례군 구례읍 봉북리 1423-1 일원에 위치한다. 구례 공설 운동장 건립에 앞서 2005년에 발굴 조사하였다. 유적은 섬진강과 지류인 서시천이 합류하는 지점에 형성된 넓은 충적 대지에 조성되어 있으며, 해발 28~29m의 평지에 입지한다. 유적 중앙부에 저습지가 있으며 저습지 북쪽을 ‘가’지구, 남서쪽을 ‘나’지구로 구분하였다. 청동기 시대 유구는 ‘나’지구에서 [[집자리|집자리]] 3기, [[구덩이|구덩이]] 10기, [[야외노지|야외 화덕 자리(野外爐址)]] 5기, [[고인돌|고인돌]] 3기가 확인되었다. 이밖에 삼국 시대, 통일 신라~조선 시대에 해당하는 다양한 유구가 조사되었다. 집자리는 3기가 확인되었는데 평면 형태는 방형이다. 1호는 내부에 타원형 구덩이와 그 바깥 양쪽에 [[기둥구멍|기둥 구멍(柱孔)]]이 있고, 3호는 내부에서 화덕 자리가 확인되었다. 토기류는 대부분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로 조각이 많이 수습되었다. 형태를 파악할 수 있는 토기로는 골아가리 구멍무늬 토기(口脣刻目孔列文土器), [[골아가리토기|골아가리 토기(口脣刻目土器)]], [[구멍무늬토기|구멍무늬 토기(孔列土器)]], [[겹아가리짧은빗금무늬골아가리토기|겹아가리 짧은 빗금무늬 골아가리 토기(二重口緣短斜線文口脣刻目土器)]], [[바리모양토기|바리 토기(鉢形土器)]], [[깊은바리모양토기|깊은 바리 토기(深鉢形土器)]]가 있다. 석기류는 [[간돌검|간 돌검]], 간 돌살촉, [[합인석부|양날 돌도끼(兩刃石斧)]], 홈자귀(有溝石斧), [[구멍돌도끼|구멍 돌도끼(有孔石斧)]]가 있다. 고인돌은 ‘나’지구 남동쪽에서 3기가 확인되었는데 2m 간격을 두고 분포한다. 삼국 시대 이후 자연 수로가 고인돌 서쪽을 지나가 [[덮개돌|덮개돌(上石)]]과 무덤방(墓室)이 유실되거나 훼손되었다. 1·3호 덮개돌 아래에는 바닥에 작은 강돌(川石)을 깔았으며, 1·2호는 [[받침돌|받침돌(支石)]]이 남아있다. 유물은 1호에서 [[간돌살촉|간 돌살촉]]이 수습되었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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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유적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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