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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명산리 유적(蔚州 明山里遺蹟)}} {{유적정보 | 이칭별칭=울주 명산리 유적 | 키워드=[[집자리]], [[환호]], [[도랑]], [[화덕 자리]], [[바리 토기]], [[항아리 모양 토기]], [[독 모양 토기]], [[그물추]], [[간 돌살촉]], [[돌도끼]], [[반달 돌칼]], [[숫돌]], [[공이]], [[돌대팻날]], [[홈자귀]], [[검단리 유형]] | 시대=청동기 | 위치=대한민국 | 집필연도=2019 | 집필자=황창한 | 조성 시기=기원전 10~5세기 | 성격=복합유적 | 크기=45,405㎡ | 소재지=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면 명산리 488 일원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설명== 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면 명산리 488 일원에 위치한다. 영어 마을 조성으로 2008~2009년 조사하여, [[집자리|집자리]] 17기, [[환호|환호]] 1기, [[구|도랑]] 1기 및 삼국~통일 신라 시대, 조선 시대 유구가 확인되었다. 유적은 평탄한 구릉부(해발 27~36m)와 완만한 사면부에 조성되었다. 이중 삼국 시대 고분군은 정선부의 평탄면에,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의 집자리와 환호는 완만한 사면부에 조성되었다. 집자리는 방형, 장방형으로 구분되며, 방형 중 규모가 가장 큰 17호는 길이 4.08m, 너비 3.5m, 장방형 중 규모가 가장 큰 15호는 길이 6.14m, 너비 4m이다. 일반적으로 방형은 4주식(柱式), 장방형은 6주식이다. 집자리의 내부에는 [[벽도랑|벽 도랑(壁溝)]], [[화덕자리|화덕 자리]], [[기둥구멍|기둥 구멍]] 등이 설치되었고, 아래쪽 모서리 한 쪽에는 외부로 연결된 배수구가 설치되었다. 벽 도랑은 3호를 제외하고 모든 집자리에서 확인되었는데 내부에 [[벽기둥구멍|벽 기둥 구멍(壁柱穴)]]이 확인되는 경우도 있다. 벽 기둥 구멍은 9·12호 벽 도랑 내부, 10호는 벽 도랑이 없는 곳의 벽면과 바닥이 만나는 모서리에 설치되었다. 9호의 벽 기둥 구멍은 형태가 길쭉하다는 점에서 벽 마감재로 판재를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화덕 자리는 5·16호를 제외하고 모두 확인되었다. 형태는 원형 또는 타원형이며, 대부분 집자리 중앙에서 한쪽 짧은 벽에 치우쳐 설치되었다. 화덕 자리는 평지식(8·10·15·17호)과 [[구덩식화덕자리|구덩식(竪穴式)]]으로 구분된다. 집자리의 폐기 양상은 자연적인 것과 화재(1·9·12호)로 추정되며, 일부는 내부에 [[돌무지|돌무지(積石)]]가 확인된다. 출토 유물은 토기류 19점, 토제품 2점, 석기류 26점이다. 토기는 [[바리모양토기|바리 토기(鉢形土器)]], [[항아리모양토기|항아리 모양 토기]], [[옹형토기|독 모양 토기(甕形土器)]] 등이 확인되었다. 14호에서 출토된 바닥 편에서는 곡물 알갱이로 추정되는 흔적이 확인되었다. 13호에서는 [[그물추|그물추]] 2점이 출토되었는데 형태는 공 모양(球形)이다. 석기류는 [[간돌살촉|간 돌살촉]], [[돌도끼|돌도끼]], [[반달돌칼|반달 돌칼]], [[숫돌|숫돌(砥石)]], [[공이|공이]], 미완성 석기가 출토되었다. 간 돌살촉 중 8호 출토품 2점은 미완성품인데, 슴베식(有莖式)으로 추정된다. 13호 출토품은 슴베가 없는 형식(無莖式)이며, 나머지 5점은 슴베식으로 추정된다. 돌도끼는 [[돌대팻날|돌대팻날(扁平片刃石斧)]]이 많으며, 13호에서 [[홈자귀|홈자귀(有溝石斧)]] 1점이 출토되었다. 날 부분이 결실되어 몸통만 남아 있으나, 일부 떼기 흔적이 관찰되어 홈자귀를 재가공하여 다른 석기를 제작하려고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반달 돌칼은 물고기 모양과 배 모양(舟形)이다. 돌칼은 돌무지에서 출토되어 의례 행위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집자리에서 미완성품을 가공하여 석기를 제작한 흔적으로 볼 때 가구(家口)별로 석기를 제작하여 사용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환호는 유적의 남쪽 사면(해발 31~35m)에 위치하며 평면 형태는 물방울 모양이다. 출입구는 3곳에서 확인되었으며 토층에서 기반토와 유사한 층이 퇴적되어 안쪽에 [[토루|토루(土壘)]]가 존재하였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목책|목책(木柵)]] 등의 시설은 확인되지 않았다. 환호 내부에 집자리 2기가 각각 남·북쪽에 인접하여 위치한다. [[울주검단리유적|울산 검단리 마을 유적]]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환호로 둘러싸인 마을이 조사되었고, 이후 [[울산연암동환호유적|연암동 환호 유적]], [[울주천상리유적|천상리 유적]], [[울산창평동환호유적|창평동 환호 유적]], [[울주교동리유적|교동리 유적]] 등이 조사되었다. 명산리 유적의 평면과 출입구의 형태는 검단리 마을 유적과 유사하다. 환호의 내부에는 토기 편과 깬돌(割石)이 깔려 있는데 특히 서쪽 구간에 집중되어 있다. 출토 유물은 토기류 64점, 석기류 3점, 그물추 8점이다. 토기는 [[깊은바리모양토기|깊은 바리 토기]]와 항아리 모양 토기이며, 무늬는 외면에서 내면으로 반관통된 구멍무늬, 종 방향 낟알무늬가 확인되었다. 석기는 간 돌살촉, 공이, [[격지|격지(薄片)]] 등이다. 환호의 기능은 방어, 경계, 배수와 집수, 의례 등 다양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유적의 환호는 의례적 성격이 강한 것으로 추정된다. 환호는 내부를 외부와 구별하고자 하는 의미가 있는데 내부에서 확인된 집자리 2기는 환호와 너무 인접하여 배치가 어색하다. 따라서 환호와 집자리는 동 시기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이와 같이 환호 내부에 아무런 시설이 없고, 목책 등 특별한 시설이 확인되지 않는 점으로 볼 때 방어보다는 의례와 같은 특수한 용도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환호 일부 구간에서 다량의 토기 편이 확인되는 양상은 특수한 공간에 대한 의례적인 행위로 판단된다. 유적의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은 2호 2550±20 BP(보정 연대 기원전 798~566년), 3호 2475±20~2460±20 BP(보정 연대 기원전 764~415년), 9호 2725±20 BP(보정 연대 기원전 912~820년), 12호 2585±20~2550±25 BP(보정 연대 기원전 806~559년)로 확인되었다. 유적의 시기는 집자리의 형태와 출토된 유물,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를 통해 볼 때, [[검단리유형|검단리 유형]] 단계로 청동기 시대 늦은 시기에 해당한다. ==조사정보== {|class="listtable"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시굴조사 || 2007년 10월 17일~2007년 12월 18일 || 울산 명산리 유적 || 2011 || 울산문화재연구원 |- | 발굴조사 || 2008년 12월 1일~2009년 10월 26일 || 울산 명산리 유적 || 2011 || 울산문화재연구원 |}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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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유적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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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0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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