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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백원리 고인돌군[成川 百源里支石墓群]}}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백원리 고인돌군 | 이칭별칭=성천 백원리 고인돌군, 성천 백원리 지석묘군, 성천 백원로동자구 고인돌군, 성천 백원로동자구 지석묘군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북한 | 소재지=평안남도 성천군 백원리(舊 백원로동자구) | 성격=고인돌 | 키워드=[[고인돌]], [[오덕형 고인돌]], [[세형동검]], [[청동 지우개]], [[청동 단추]]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배진성 }} ==설명== 평안남도 성천군 백원리(舊 백원로동자구)에 위치한다. 이곳에서 서남쪽으로 약 1㎞ 떨어진 곳에 해발 100m 정도의 천지봉이 있는데, 여기서 뻗은 능선 위에 [[고인돌|고인돌]]이 입지한다. 천지봉은 능선마다 고인돌이 많고 서북쪽으로 약 10㎞ 떨어진 곳에는 룡산리 순장 무덤이 있다. 발굴된 고인돌 가운데 상태가 좋은 9호 고인돌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돌무지 사이에 큰 판돌(板石)한 매가 기울어진 채 박혀 있었고, 뚜껑돌(蓋石)은 없었다. 무덤방은 세 벽이 남아 있었고, 내부에는 돌조각들 아래에 모래층이 있고 다시 그 아래에 손바닥 크기의 깬돌(割石)이 한 벌 깔린 바닥면이 노출되었다. 유물은 이 바닥면 위에서 출토되었다. 벽 아랫부분에는 자갈돌이 벽체를 감싸듯이 박혀 있었는데, 벽체를 보강하기 위한 기초 시설로 판단된다. 9호 고인돌은 두 개의 긴 받침돌 사이에 안으로 약간 들여서 짧은 막음돌을 세워 무덤방을 축조한 [[탁자식고인돌|오덕형 고인돌]]이다. 동남쪽 막음돌은 얇은 판돌 2겹으로 되었는데, 안쪽 판돌은 버팀돌의 기능이며 바깥쪽 판돌은 일종의 문 역할로 볼 수도 있다. 출토 유물은 등대가 슴베까지 이어진 [[세형동검|세형동검]] 1점, [[청동지우개|청동 지우개(銅鉈)]] 1점, [[청동단추|청동 단추]] 2점, [[신천명사리유적|명사리]] 출토품과 유사한 [[토기|토기]] 1점이다. 이 유적에서 주목되는 점은 오덕형 고인돌에서 세형동검이 출토되었다는 것이다. 유물의 출토 상태가 안정적이라면 오덕형 고인돌의 하한을 좀 더 내려 볼 수 있는 근거가 될 가능성도 있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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