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주 메뉴
주 메뉴
사이드바로 이동
숨기기
둘러보기
대문
최근 바뀜
임의의 문서로
미디어위키 도움말
한국고고학사전
검색
검색
보이기
로그인
개인 도구
로그인
600-1072 문서 원본 보기
문서
토론
한국어
읽기
원본 보기
역사 보기
도구
도구
사이드바로 이동
숨기기
동작
읽기
원본 보기
역사 보기
일반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
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
특수 문서 목록
문서 정보
보이기
사이드바로 이동
숨기기
←
600-1072
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관리자
.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DISPLAYTITLE:반정리 유적(永川 半亭里遺蹟)}}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반정리 유적 | 이칭별칭=영천 반정리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경상북도 영천시 북안면 반정리 395-1 일원 | 성격=복합유적 | 키워드=[[집자리]], [[구덩이]], [[도랑]], [[기둥건물터]], [[바리 토기]], [[항아리 모양 토기]], [[붉은 간 토기]], [[반달 돌칼]]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이석범 }} ==설명== 경상북도 영천시 북안면 반정리 395-1 일원에 위치한다. 경부 고속 도로 언양-영천 간 확장 공사에 따라 2012~2018년 34개의 유적을 조사하였고, 그 중 반정리 유적에서는 [[집자리|집자리]] 33기, [[구덩이|구덩이]] 17기, [[구|도랑(溝)]] 18기, [[기둥건물터|기둥 건물터(高床建物址)]] 2기 및 [[신석기시대|신석기 시대]] [[깐돌|깐돌(敷石)]] 1기가 확인되었다. 조사는 고속 도로 서울 방면(Ⅰ·Ⅱ구역)과 부산 방면(Ⅰ·Ⅱ구역)으로 구분되며, 유구는 대부분 부산 방면 Ⅰ구역에 분포한다. 유적은 금오산(해발 412m)에서 북쪽으로 뻗은 구릉 끝 자락에 위치한 ‘반정마을’과 북안천 사이의 선상지상 충적지(沖積地)에 입지한다. 남동쪽으로 1.4㎞ 떨어져 [[영천고지리팔암유적|영천 고지리 팔암 유적]]을 비롯하여 북안천 주변으로 [[영천내포리고인돌군|영천 내포리]]·[[영천임포리고인돌군|임포리]]·[[영천고지리고인돌군|고지리]]·[[영천신리고인돌군|신리 고인돌군]], [[경주아화리고인돌군|경주 아화리 고인돌군]] 등 다수의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 유적이 분포한다. 집자리는 원형 1기, 방형 12기, 장방형 7기, 세장방형 7기로 구분된다. 내부 시설로는 [[벽도랑|벽 도랑(壁溝)]], [[기둥구멍|기둥 구멍]], [[화덕자리|화덕 자리]] 등이 있다. 벽 도랑은 원형을 제외한 모든 집자리(1·10·11~15·17~23·25·26호)에서 확인되었고, 화덕 자리는 17기(1·2·4·5·11~18·20~23·28호)에 설치되었다. 세장방형(11·13·22·28호) 장방형(18·20·23~27호)에는 바닥 가장자리를 따라 벽 도랑이 설치되어 있으며, 중앙부에 1개 또는 2개 이상의 화덕 자리가 확인된다. 화덕 자리는 대부분 바닥식(床面式)이다. 18호는 바닥 면에서 다량의 숯이 확인되었는데, 기둥과 지붕재로 사용된 것으로 판단된다. 출토 유물은 [[바리모양토기|바리 토기(鉢形土器)]], [[항아리모양토기|항아리 모양 토기(壺形土器)]], [[항아리모양토기|항아리 모양 토기(壺形土器)]], [[붉은간토기|붉은 간 토기]], [[간돌검|간 돌검]], [[통자루간돌검|통자루 간 돌검(一段柄式磨製石劍)]], [[슴베간돌살촉|슴베 간 돌살촉(有莖式磨製石鏃)]], [[기둥모양외날돌자귀|기둥 모양 외날 돌자귀(柱狀片刃石斧)]], [[반달돌칼|반달 돌칼]], [[숫돌|숫돌(砥石)]], [[가락바퀴|가락바퀴]] 등이며, 토기의 문양은 [[골아가리|골아가리(口脣刻目)]]이다. 구덩이는 부산 방면 Ⅰ구역의 북서편에 집중되어 확인되는데, 집자리 주변 또는 빈 터에 3~6기가 무리(群集)져 있다. 원형, 타원형, 방형, 부정형(不定形)이며, 지름 1~2m로 내부 시설은 없다. 도랑은 집자리를 파괴하고 조성되었는데, ‘一’, ‘Y’자 모양 , 부정형 등 다양하다. 유물은 9호 도랑에서 붉은 간 토기, 반달 돌칼이 출토되었다. 유적에서 집자리의 밀집된 양상을 통해 북안천 서안(西岸) 일대에 대규모의 청동기 시대 마을이 분포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빗살무늬토기|빗살무늬 토기(櫛文土器)]]가 확인된 깐돌로 보아 신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하여 청동기 시대 이른 시기부터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판단된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유적정보
(
원본 보기
)
600-1072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