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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매호동 고인돌군[大邱 梅湖洞支石墓群]}} {{유적정보 | 이칭별칭=대구 매호동 고인돌군, 대구 매호동 지석묘군 | 키워드=[[고인돌]], [[돌널무덤]], [[돌덧널무덤]], [[붉은 간 토기]], [[통자루 간 돌검]], [[턱 슴베 간 돌살촉]], [[홈 자루 간 돌검]], [[슴베 간 돌살촉]], [[대롱옥]] | 시대=청동기 | 위치=대한민국 | 집필연도=2019 | 집필자=김광명 | 조성 시기=청동기 | 성격=고인돌 | 소재지=대구광역시 수성구 매호동 802-92, 1330, 1330-2, 1331, 1346 일원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설명== 대구광역시 수성구 매호동 802-92, 1330, 1330-2, 1331, 1346 일원에 위치한다. 시지 택지 개발 지구에 포함되어 1992년 매호동 고인돌Ⅰ~Ⅲ군, [[대구시지동고인돌군|시지동 고인돌군]] Ⅰ·Ⅱ가 함께 조사되었다. 고인돌군은 남쪽으로 뻗은 선상지의 선단부(扇端部)에 입지하며, 북편으로는 [[덧띠토기|덧띠 토기(粘土帶土器)]] 산포지와 고산 토성이 위치한다. 매호동 고인돌과 시지동 고인돌은 400m 거리에 위치한다. 고산 지역의 고인돌군은 1986년 지표 조사 당시 시지동 8기, 매호동 10기, 사월동 10기 등 총 28기의 암괴(岩塊)가 동서 상으로 일정한 간격으로 길게 분포하고 있었다고 한다. [[고인돌|고인돌]]은 [[덮개돌|덮개돌(上石)]]의 배치 상태에 따라 구분된다. 매호동 고인돌 Ⅰ군은 고인돌 4기, [[돌널무덤|돌널무덤(石棺墓)]] 2기, 부석(敷石) 시설 1기가 확인되었다. 고인돌의 덮개돌은 남아 있으나, 하부의 유구는 확인되지 않았다. 2·3호에서 5~11m 떨어져 돌널무덤이 위치한다. 1호 돌널무덤은 길이 2.1m, 너비 1.2m, 깊이 0.3m이며, 사람 뼈와 치아를 통해 피장자는 20세 전후로 추정된다. Ⅱ군은 Ⅰ군에서 남서쪽으로 100m 떨어져 위치하며, 고인돌 2기의 덮개돌이 남아 있었고 주변에서 돌널무덤 2기, [[돌덧널무덤|돌덧널무덤]] 1기를 확인하였다. 2호 돌널무덤은 길이 1.1m, 너비 0.6m, 깊이 0.15m로, 고산 지역 고인돌 장법과 관련하여 주목을 받았다. Ⅲ군은 Ⅱ군에서 서쪽으로 200m 떨어져 위치하며, 고인돌 4기, 돌널무덤 5기, 돌덧널무덤 1기가 확인되었다. 고인돌 4기의 덮개돌은 동서 방향으로 열을 이룬다. 2호 고인돌은 하부에 부석(敷石)과 [[받침돌|받침돌(支石)]]을 갖추고 있으며, 점성이 강한 적갈색 점토를 이용해 돌널 사이를 보강하였다. 덮개돌은 길이 3.7m, 너비 2.8m, 두께 1.2m, 무게 16톤이며, 부석 시설은 부정형으로 지름 약 3.1m이다. 돌널은 길이 1.8m, 너비 0.6m, 깊이 0.3m로, 판돌을 세워 축조한 후 바닥에는 자갈을 깔았다. 이 고인돌은 지하식에서 지상식으로의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사례로서 주목된다. 돌덧널무덤은 내부 서쪽 짧은 벽 쪽에 밀착하여 소형의 돌널을 조립한 이중 구조로 주목을 받았다. 내부에서 두 귀 달린 항아리 모양의 [[붉은간토기|붉은 간 토기]] 1점이 출토되었다. 5호 돌널무덤은 길이 2.2m, 너비 1.3m, 깊이 0.35~50m이며, [[통자루간돌검|통자루 간 돌검(一段柄式磨製石劍)]]이 1점, [[턱슴베간돌살촉|턱 슴베 간 돌살촉(二段莖式磨製石鏃)]] 6점이 출토되었다. 시지동 고인돌군은 매호동 802-92, 1346에 위치한다. Ⅰ군은 3기의 고인돌과 관련된 매장 주체부 및 주변에 돌널무덤(石棺墓) 13기, 돌덧널무덤(石槨墓) 2기가 확인되었다. 돌널무덤, 돌덧널무덤의 배치는 4열을 이루고 있다. 3호 고인돌의 남쪽에는 길이 방향으로 나란하게 4·5·7~9호 돌널무덤이 위치한다. 3호 고인돌은 길이 3.2m, 너비 1.6m, 깊이 0.8m, 무게 7.5톤으로 조사된 고인돌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다. 덮개돌은 평면 장방형의 판돌 모양으로 재질은 응회암(凝灰岩)이다. [[무덤방|무덤방(墓室)]]은 지하식 돌덧널형으로, 길이 2.6m, 너비 0.9m, 깊이 1m이다. [[뚜껑돌|뚜껑돌(蓋石)]]은 청석(靑石) 판돌로 하고, 벽석은 강돌(川石)과 깬돌(割石)을 이용하여 세로 쌓기(縱平積)와 가로 쌓기(橫平積)를 혼용하였다. 바닥은 0.1m 내외의 강돌을 깔았다. 1호 돌덧널무덤은 길이 1.55m, 너비 0.5m, 깊이 0.4m이며, 뚜껑돌은 여러 매의 청석 판돌을 연결하였다. 긴 벽은 판돌을 가로 쌓기와 세로 쌓기를 혼용하여 4~5단이 되게 쌓았으며, 동쪽 짧은 벽은 1매, 서쪽 짧은 벽은 2매를 세워 만들었다. 바닥은 강돌을 한겹 깔고 그 위에 길이 1.75m, 너비 0.75m, 두께 0.05m의 판돌 1매를 깔았다. 출토 유물은 [[홈자루간돌검|홈 자루 간 돌검(二段柄式磨製石劍)]] 1점, [[자루간돌검|자루 간 돌검(有柄式磨製石劍)]] 2점, 붉은 간 토기 2점, [[슴베간돌살촉|슴베 간 돌살촉(有莖式磨製石鏃)]] 3점이 있다. 시지동 고인돌 Ⅱ군은 1기의 덮개돌과 그 주변에서 돌널무덤, 돌덧널무덤이 각 1기씩 확인되었다. 고인돌의 덮개돌은 길이 2.61m, 너비 1.53m, 두께 0.98m, 무게 4톤이다. 무덤방은 강돌과 납작 깬돌을 이용한 지상식 돌덧널형이며, 길이 1.45m, 너비 0.45m, 깊이 0.46m이다. 2호 돌널무덤은 길이 1.13m, 너비 0.24m, 깊이 0.36m로 소형이지만, 내부에서 붉은 간 토기 1점, 슴베 간 돌살촉 1점, [[대롱옥|대롱옥(管玉)]] 11점 등이 출토되었다. 매호동 고인돌은 고인돌의 형식과 출토 유물 등을 통해 볼 때, 청동기 시대 전 시기에 걸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시지동 고인돌Ⅰ의 유구 분포 양상은 인근 [[대구상동고인돌군|대구 상동 고인돌]], 대봉동 고인돌과 같이 일정한 기획성을 가지고 축조된 점에서 당시 고산 지역 고인돌 축조 집단의 묘제와 묘형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조사정보== {|class="listtable"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발굴조사 || 1992년 3월 15일~1995년 3월 15일 || 시지의 문화유적Ⅰ-지석묘 외 || 1999 || 영남대학교박물관 |}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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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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