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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미사동 유적(河南 渼沙洞遺蹟)}}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미사동 유적 | 이칭별칭=하남 미사동 유적, 하남 미사리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경기도 하남시 미사동 557 일원 | 성격=복합유적 | 키워드=[[집자리]], [[구덩이]], [[지상 가옥]], [[도랑]], [[목책 시설]], [[돋을띠 골무늬 토기]], [[흔암리식 토기]], [[미사리식 집자리]], [[돌을 두른 화덕 자리]]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송만영 }} ==설명== 사적 하남 미사리 유적. 경기도 하남시 미사동 557 일원에 위치한다. 1960년 김원룡에 의해 신석기 시대 유적으로 학계에 처음 보고되었으며, 1980년 4개 대학 연합팀에 의한 긴급 조사로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 [[집자리|집자리]]가 확인되었다. 숭실대학교박물관 주관으로 1987~1992년까지 3차례에 걸친 발굴 조사에서 집자리 37기, [[구덩이|구덩이(竪穴)]] 34기, [[지상가옥|지상 가옥(地上家屋)]] 1기, [[구|도랑(溝]]) 1기, [[목책|목책 시설(木柵施設)]] 1기, 기타 용도를 알 수 없는 유구 3기 등이 조사되었다. 미사동은 한강 중류에 위치한 남북 4㎞, 동서 1.5㎞가량 되는 럭비공 모양의 하중도(河中島)에 있는데, 유적은 해발 20m 내외의 충적 대지 상에 분포한다. 유적에는 [[신석기시대|신석기]]부터 [[청동기시대|청동기]], [[원삼국시대|원삼국]], [[백제|백제]] 시대에 이르는 층이 형성되어 있다. 이 가운데 청동기 시대 문화층은 A지구 Ⅷ층에 해당된다. 집자리는 시기에 따라 크게 [[돋을띠골무늬토기|돋을띠 골무늬 토기(刻目突帶文土器)]] 단계와 [[흔암리식토기|흔암리식 토기(欣岩里式土器)]] 단계로 구분되며, 흔암리식 토기 단계는 세 시기로 세분된다. 돋을띠 골무늬 토기가 출토된 집자리는 최근 ‘[[미사리식집자리|미사리식 집자리]]’로 불리는데, 평면 형태가 방형으로 바닥에는 편평한 돌을 깔고 주위에 [[돌두름식화덕자리|돌을 두른(石床圍石式) 화덕 자리]]를 특징으로 한다. 4기의 집자리가 한 단위를 이루면서 조사되었는데, 모두 화재에 의해 폐기된 것으로 추정된다. 집자리에서 출토된 유물은 돋을띠 골무늬 토기를 비롯하여 둥근 바닥의 [[깊은바리모양토기|깊은 바리 토기(深鉢形土器)]], [[삼각오목돌살촉|삼각 오목 돌살촉(三角灣入鏃)]], [[물고기모양반달돌칼|물고기 모양 반달 돌칼]] 등이 있다. 흔암리식 토기 단계의 집자리는 평면 장방형 또는 세장방형으로 내부에 [[구덩식화덕자리|구덩이식(竪穴式) 화덕 자리]]가 설치되어 있다. 이 단계에는 장축을 한강의 흐름 방향과 동일하게 두었으며, 가족 구성원의 증가에 따라 장축 방향으로 가옥을 증축했던 것으로 보인다. 집자리 내부에서 출토된 토기는 [[구멍무늬|구멍무늬(孔列文)]]와 [[단사선문|짧은 빗금무늬(短斜線文)]]가 함께 장식된 흔암리식 토기와 몸통 윗부분의 점토 접합 흔에 짧은 빗금무늬를 새긴 퇴화된 흔암리식 토기, 그리고 구멍무늬 토기, [[골아가리구멍무늬토기|골아가리 구멍무늬 토기(口脣刻目孔列土器)]] 등이 있는데, 이들 토기가 출토된 집자리 간에는 시기 차이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 외에도 [[항아리모양토기|항아리 모양 토기(壺形土器)]]와 [[붉은간토기|붉은 간 토기]], 흑색이나 갈색 간 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석기는 [[홈자리간돌검|홈 자루 간 돌검(二段柄式磨製石劍)]], 물고기 모양 및 장방형 반달 돌칼, [[간돌살촉|간 돌살촉]], [[양날돌도끼|양날 돌도끼(兩刃石斧)]], [[돌끌|돌끌(石鑿)]], [[갈판|갈판(碾石)]], [[그물추|그물추]], [[가락바퀴|가락바퀴]], [[숫돌|숫돌(砥石)]] 등이 확인되었으며 [[곱은옥|곱은옥(曲玉)]]과 [[대롱옥|대롱옥(管玉)]] 등의 장신구도 출토되었다. 구덩이는 대부분 흔암리식 토기 단계의 것으로 보이는데, 길이가 1m 내외로 평면은 원형, 타원형, 장방형, 방형 등이다. 가옥에 부속된 저장 시설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이외에도 지상 가옥과 목책 시설이 조사되었는데, 대형의 집자리가 조사된 고려대 34호 집자리 부근에 분포하고 있어 가장 위계가 높았던 가옥군에 부속된 시설임을 알 수 있다. 돋을띠 골무늬 토기 단계의 집자리와 흔암리식 토기 단계의 집자리의 선후 관계에 대해서는 조사자 간에 의견 차이가 있으나, 진주 남강댐 수몰 지구 내의 청동기 시대 마을 유적에서 미사리식 집자리가 확인되면서 돋을띠 골무늬 토기 단계를 보다 이르게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며, 더욱이 미사동 유적에서 조사된 돋을띠 골무늬 토기 출토 집자리를 청동기 시대 가장 이른 시기(早期) 단계까지 소급시키는 견해도 있다. 구리 토평동 유적과 춘천 중도동 유적에서도 미사동 유적의 돋을띠 골무늬 토기 집자리와 같은 시기의 양상이 확인되었다. ==조사정보== {|class="listtable" ! class="col-type"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발굴조사 || 1980년 || 미사리 1~5 || 1994 || 미사리선사유적발굴조사단 |- | 발굴조사 || 1987년~1992년 || 미사리 1~5 || 1994 || 미사리선사유적발굴조사단 |} ==지정정보== {|class="listtable" ! 구분 !! 지정 종목 !! 지정 명칭 !! 자세히 보기 |- | 국가유산 || 사적 || 하남 미사리 유적 (河南 渼沙里 遺蹟) || <span class="plainlinks">[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1333102690000 🔗]</span> |}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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