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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마공리 유적(尙州 馬孔里遺蹟)}}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마공리 유적 | 이칭별칭=상주 마공리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경상북도 상주시 청리면 마공리 1236 일원 | 성격=복합유적 | 키워드=[[고인돌]], [[민무늬 토기]], [[돌살촉]], [[돌검]], [[붉은 간 토기]], [[대롱옥]], [[굽혀묻기]]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윤호필 }} ==설명== 경상북도 상주시 청리면 마공리 1236 일원에 위치한다. 상주 청리 지방 공업 단지 조성에 앞서 1996~1998년 1·2차로 나누어 조사하여 A지구에서 [[구덩이|구덩이]] 1기, I-나지구에서 [[고인돌|고인돌]] 15기를 확인하였다. 이외에 [[삼국시대|삼국 시대]]~[[근대|근대]]까지 다양한 유구를 조사하였다. 1차 조사 지역은 기앙산(해발 704m)에서 북서쪽으로 뻗은 능선 사이 곡부 말단부의 평지와 병성천에 의해 형성된 충적지가 만나는 지역에 입지하며, 2차 조사 지역은 기앙산에서 북서쪽으로 뻗은 능선의 말단부 완사면에 입지한다. A지구 구덩이는 후대에 일부 훼손되어 정확한 형태는 알 수 없지만 방형으로 추정되며, 길이 3.5m, 너비 2m, 깊이 0.24m이다. 내부에는 반 정도 잘려나간 타원형 구덩이가 확인되며, 목탄 및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 [[외반구연민무늬토기|외반 구연(外反口緣) 민무늬 토기]], [[돌살촉|돌살촉]] 1점 등이 출토되었으나 기능이나 용도는 알 수 없다. Ⅰ-나지구 고인돌은 크게 2개의 무리를 이루며, 등고선 방향과 나란하다. 1~7호 고인돌은 경사면 위쪽에 분포하며, 8~14호는 경사면 아래쪽에 위치한다. [[덮개돌|덮개돌(上石)]]은 [[화강암|화강암]]으로 길이 1.24~3.62m, 너비 1.02~2.34m, 두께 0.3~0.74m이다. [[매장주체부|매장 주체부(埋葬主體部)]]는 없는 것이 6기(5·8·10·11·13·14호)이고, 있는 것은 지상식과 지하식으로 구분된다. 축조 방법은 유사[[돌덧널|돌덧널(石槨)]]과 [[석관|돌널(石棺)]]로 구분되지만 대부분 상자 모양(箱形)의 돌널이다. 덮개돌 아래에는 대부분 [[받침돌|받침돌(支石)]]이 없는 [[덮개식 고인돌|덮개식 고인돌(蓋石式支石墓)]]이며, 13호는 2매의 받침돌이 확인된다. 바닥은 맨땅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과 판돌(板石)을 깐 것이 있다. [[무덤방|무덤방]]은 길이 0.75~1.52m, 너비 0.22~1m, 깊이 0.2~0.6m이다. [[묘역|묘역(墓域)]]은 2·3·6·7호에서 확인되며, 일부 훼손되어 정확한 형태는 알 수 없지만 장방형에 가깝다. 묘역은 [[깬돌|깬돌(割石)]] 1~2겹을 무덤방 중심으로 깔았다. 유물은 [[돌검|돌검]], 돌살촉, [[붉은간토기|붉은 간 토기]], [[대롱옥|대롱옥(管玉)]] 등이 출토되었다. 이중 돌검+돌살촉+붉은 간 토기가 세트로 출토된 것은 4호이며, 돌검+돌살촉 세트는 3-1호, 돌살촉+대롱옥은 9호, 나머지는 유물이 없거나 하나씩만 출토되었다. 대부분 돌살촉의 부장량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일정한 지역에 고인돌의 무리가 형성된 것은 무덤 공간이 정착되고 확대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유적에서 확인된 무덤방의 규모로 볼 때 성인을 [[신전장|펴묻기(伸展葬)]]한 것 보다 [[굴장|굽혀묻기(屈葬)]] 하거나 2차장 또는 유아 무덤으로 사용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이 유적은 상주 지역에서 처음 이루어진 발굴 조사로 공백으로 남아 있던 영남 북부 지역의 무덤 연구에 기초적인 자료가 확보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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