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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만정리 신기 유적(安城 萬井里신기遺蹟)}} {{유적정보 | 이칭별칭=안성 만정리 신기 유적 | 키워드=[[집자리]], [[구덩이]], [[고인돌]], [[돌널무덤]], [[움무덤]] | 시대=청동기 | 위치=대한민국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서길덕 | 조성 시기=청동기 | 성격=복합유적 | 소재지=경기도 안성시 공도읍 만정리 391-1 일원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설명== 경기도 안성시 공도읍 만정리 391-1 일원에 위치한다. 유적은 만정리 6개 행정리 중 신기 마을과 신동 2리에 해당한다. 택지 조성 사업의 일환으로 2004~2006년 발굴하였다. 총 6개 지점으로 나누어 조사한 결과, 청동기 시대 [[집자리|집자리]] 11기, [[구덩이|구덩이]] 1기, [[고인돌|고인돌]] 1기, [[돌널무덤|돌널무덤(石棺墓)]] 5기와 청동기~초기 철기 시대 [[움무덤|움무덤(土壙墓)]] 3기가 확인되었다. 지형은 해발 20~50m의 낮은 구릉성 산지로, 남-북으로 흐르는 동쪽의 유천과 서쪽의 승두천 사이에 위치한다. 북으로는 [[안성반제리유적|안성 반제리 유적]]이, 인근 남동쪽에는 [[안성만정리유적|안성 만정리 유적]]이 자리한다. 집자리의 평면 형태는 3지점 3호가 원형, 3지점 2·4호가 말각 방형을 띠고 나머지는 모두 장방형이다. 장방형 집자리의 내부 시설은 [[화덕자리|화덕자리]], [[저장구덩이|저장 구덩이]], 벽 도랑(壁溝), 기둥 구멍, 배수구, 단 시설 등 다양하다. 유물은 [[민무늬토기|민무늬토기]], [[겹아가리짧은빗금구멍무늬토기|겹아가리 짧은 빗금 구멍무늬 토기(二重口緣短斜線孔列土器)]], [[겹아가리짧은빗금무늬토기|겹아가리 짧은 빗금무늬 토기(二重口緣短斜線文土器)]], [[구멍무늬토기|구멍무늬 토기(孔列土器)]], [[골아가리토기|골아가리 토기(口脣刻目土器)]]와 [[붉은간토기|붉은간토기]] 등 토기류와 [[숫돌|숫돌(砥石)]], [[반달돌칼|반달돌칼]], [[돌살촉|돌살촉]], [[갈판|갈판(碾石)]], [[간돌검|간 돌검]] 등이 나왔다. 말각 방형과 원형 집자리의 내부 시설은 작업 구덩이, 기둥 구멍(2·4주식), 벽 도랑, 배수로가 확인된다. 유물은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 붉은 간 토기, [[바닥구멍토기|바닥구멍토기(低部透孔土器)]], [[갈돌|갈돌(碾石棒)]], 갈판(碾石), [[숫돌|숫돌]], [[돌끌|돌끌(石鑿)]], 돌살촉 등이 나왔다. 집자리의 형태와 출토 유물로 보아 시기 차이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고인돌은 2지점의 가구역 구릉 정상(해발 34m)에 위치한다. 무덤방을 판 후 받침돌支石을 세우고 그 위를 덮개돌上石을 덮은 덮개식 고인돌로 추정된다. 덮개돌은 평면 장방형으로, 동서 방향이며 길이 3.04m, 너비 1.66m, 두께 1.31m이다. 받침돌은 원래 4매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되나 도굴로 1매가 없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유물은 민무늬 토기 및 간 돌검 편이 나왔다. 돌널무덤은 고인돌의 북쪽에 인접하여 5기가 확인되었다. 평면 형태는 장방형과 원형으로 구분되며, 주로 판자돌을 이용하여 돌널을 만들었다.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주목할 만한 것은 3호와 4호에서 다량의 숯과 사람 뼈 편이 확인된 점이다. 이러한 화장묘는 주변의 [[평택토진리유적|평택 토진리]], [[평택수월암리유적|평택 수월암리 유적]]과 비교 가능하다. 특히 큰 고인돌 주변으로 작은 [[돌뚜껑움무덤|돌뚜껑움무덤(石蓋土壙墓)]] 또는 돌널무덤을 갖춘 평택 수월암리 유적과 매우 비슷한 양상이다. 청동기~초기 철기 시대 움무덤은 2·4·6지점에서 각 1기씩 모두 3기가 확인되었으며, 야트막한 구릉 위 혹은 완만한 비탈에 독립적으로 분포한다. 2지점의 움무덤에서는 죽은 이의 허리쪽에 돌살촉, [[청동살촉|청동 살촉(靑銅鏃)]] , [[쇠살촉|쇠살촉(鐵鏃)]]이 식물성 끈으로 묶여 나왔고 4지점의 움무덤에서는 의도적으로 부러뜨린 [[세형동검|세형동검]]이 나왔다. 이는 경기도에서 발굴을 통해 세형동검이 찾아진 최초의 움무덤 사례이다. 또한 6지점의 움무덤에서는 [[긴목검은간토기|긴 목 검은 간 토기(黑陶長頸壺)]]1점, 소형의 [[덧띠토기|덧띠토기(粘土帶土器)]]1점, 천하석제 장식 옥(飾玉) 1점이 나왔다. 특히 6지점의 움무덤은 회색질의 목질흔이 확인되었고 토층이 ‘U’자 모양을 이루는 점에서 통나무널이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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