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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돋을띠무늬 토기[突帶文土器]}} {{개념정보 | 한글표제어=돋을띠무늬 토기 | 이칭별칭=돋을띠 골무늬 토기, 돋을띠 마디 토기 | 시대=청동기 시대 | 관련 지역=한반도 전역 | 관련 유적=하남 미사리 유적 | 키워드=[[바리 토기]], [[항아리 모양 토기]], [[미사리 유형]], [[자돌무늬]], [[빗금무늬]]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배진성 }} ==설명== 돋을띠무늬 토기는 구연부 바깥에 점토띠를 붙이고, 그 위에 [[빗금무늬|빗금무늬(斜線文)]] 또는 [[자돌문|자돌무늬(刺突文)]] 등을 새긴 것이다. 무늬 대신 두 손가락으로 점토띠를 어긋나게 비틀어 붙인 것, 무늬 없는 것도 있다. 남한에서의 돋을띠무늬는 주로 [[바리모양토기|바리 토기(鉢形土器)]]의 아가리에 장식되지만, 북한 지역에서는 바리 토기 외에 [[항아리모양토기|항아리 모양 토기(壺形土器)]]에도 새겨지는데, 아가리에서 떨어진 몸통 또는 목(頸部)과 몸통의 경계 지점에, 또는 몸통에 붙기도 한다. 점토띠의 단면 형태는 삼각형·사다리꼴(梯形)·반원형 등이 있다. 일반적으로는 아가리 전체에 돌려지지만, 3~4개로 분리되어 붙는 것도 있다. ‘돋을띠 골무늬 토기(刻目突帶文土器·刻目突帶文土器)’라고도 하며, 점토 띠가 분리되어 있는 것은 ‘돋을띠 마디 토기(節狀突帶文土器)’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 가장 이른 시기의 토기로 알려져 있으며, 지역에 따라서는 늦은 시기까지 남아 있는 사례도 있다. 중국 동북 지역 및 북한의 압록강·두만강 유역에서 먼저 알려졌고, 이후 남한에서는 중서부 지역에서 확인된 이래 최근에는 거의 전국적인 출토 사례를 보인다. 그 원류는 중국의 동북 지역이며 [[석도|돌칼(石刀)]]·[[붉은간토기|붉은 간 토기丹(塗磨硏土器)]]·[[슴베없는돌살촉|슴베 없는 돌살촉(無莖式石鏃)]]·[[단인석부|자귀날 돌도끼(單刃石斧)]] 등을 공반한 [[농경|농경]] 문화가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어 점차 남쪽으로 확산되었다고 생각된다. 연구자에 따라서는 일본까지 전파되어 농경 사회의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고 추정하기도 한다. 이 토기와 관련한 주요 유적의 하나인 [[하남미사리유적|미사동 유적]]에서는 [[돌깐돌두름식화덕자리|돌 깐 돌 두름식 화덕 자리(石床圍石式爐址)]]를 가진 정방형의 [[집자리|집자리]]에서만 돋을띠무늬 토기가 출토되었다. 이에 따라 미사리의 집자리와 돋을띠무늬 토기를 일괄 하여, [[미사리유형|미사리 유형(渼沙里類型)]]으로 분류하는 경향도 있다. 이 토기는 청동기 시대의 시기 구분뿐만 아니라 [[신석기시대|신석기 시대]]에서 청동기 시대로의 전환기 연구에 큰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고고학사적인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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