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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대평동 유적(世宗 大平洞遺蹟)}}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대평동 유적 | 이칭별칭=세종 대평동 유적, 연기 대평리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세종특별자치시 대평동 83-4 일원(舊 충청남도 연기군 금남면 대평리) | 성격=복합유적 | 키워드=[[집자리]], [[구덩이]], [[논]], [[미사리 유형]], [[역삼동 유형]]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손준호 }} ==설명== 세종특별자치시 대평동 83-4 일원(舊 충청남도 연기군 금남면 대평리)에 위치한다. 유적은 금강 남안의 자연 제방 정상부를 포함하여 해발 17~18m의 전사면과 후사면 위쪽에 형성되어 있다. 발굴은 4개 지점으로 나누어 실시되었는데, 대평들에 형성된 2개의 자연 제방 중 서쪽에 A지점, 동쪽에 B~D지점이 각각 자리한다. 2009년 6월부터 2010년 8월까지 A~C지점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었으며, 이후 2012년 11월부터 2015년 4월까지 수 차례에 걸쳐 D지점의 추가 조사가 이루어졌다. 청동기 시대의 유구는 A지점에서 [[집자리|집자리]] 12기와 작은 [[구덩이|구덩이]] 3기, B지점에서 집자리 20기와 작은 구덩이 1기, C지점에서 집자리 27기, 작은 구덩이 3기와 열을 이룬 기둥 구멍, D지점에서 집자리 11기와 [[논|논]]이 조사되었다. 유구의 분포는 주로 자연 제방의 방향을 따라 배치되는데, 중복 관계도 다수 확인되었다. 집자리의 평면 형태는 방형, 장방형, 세장방형으로 구분되며, 이가운데 장방형이 다수를 차지한다. 집자리의 내부 시설은 돌 깐 돌 두름식 혹은 돌 두름식 [[화덕자리|화덕 자리]], 무시설식 혹은 구덩식 화덕 자리, [[저장구덩이|저장 구덩이]], [[구|도랑]] 등이 확인 되었으며, 일부 집자리에서는 [[초석|기둥 받침돌]]도 관찰된다. 한편, 다른 유적에서 볼 수 없는 새로운 자료로 C지점의 열을 이룬 기둥 구멍과 D지점의 논이 주목된다. 전자의 기둥 구멍은 크게 3개의 열을 이루는데, 2~3개씩이 약 1.5m의 간격으로 설치되어 짧은 것은 길이 65m, 긴 것은 140m에 달한다. 후자는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치]]를 바탕으로 가장 이른 시기의 논으로 보고되었으나, 상대적으로 불확실한 토양 시료에 의한 결과이기 때문에 앞으로 자료의 증가를 기다릴 필요가 있다. 유물은 [[돋을띠골무늬토기|돋을띠 골무늬 토기]], [[손잡이달린토기|손잡이 달린 토기]], [[겹아가리짧은빗금무늬토기|겹아가리 짧은 빗금무늬 토기(二重口緣短斜線文土器)]], [[골아가리토기|골아가리 토기]], [[슴베없는간돌살촉|슴베 없는 간 돌살촉]], [[장방형돌칼|장방형 돌칼]] 등이 출토되었다. 유물의 출토 양상이나 집자리의 모양 등을 볼 때 청동기 시대 가장 이른 시기의 [[미사리유형|미사리 유형]]과 후속하는 [[가락동유형|가락동 유형]]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양자가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고 점진적인 변화상을 보이기 때문에, 공백기 없이 점유된 취락일 가능성이 높다. 한편, 출토 유물 가운데 A지점 5호, B지점 KC-002호 집자리에서 발견된 [[새김무늬토기|새김무늬 토기]]는 비슷한 사례를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자료로서 문양의 출자 문제와 관련하여 주목된다.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치]]를 참고할 때 유적은 청동기 시대의 이른 시기에 점유된 것으로 추정된다. 집자리의 형태와 출토 유물의 형식 등을 보면 미사리 유형의 늦은 단계부터 점진적인 가락동 유형으로의 변화 양상이 관찰된다. 대평리 유적 발굴 조사의 가장 큰 성과는 호서 지역의 충적지에도 대단위 청동기 시대 취락이 존재함을 실증적으로 확인한 것이다. 또한 그동안이 지역에서 발견되지 않았던 미사리 유형의 실체를 확인함으로써 청동기 시대의 시작과 관련된 기초 자료를 확보하였다는 점에도 의미를 둘 수 있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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