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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대야리 유적(居昌 大也里遺蹟)}}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대야리 유적 | 이칭별칭=거창 대야리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 대야리 775 | 성격=복합유적 | 키워드=[[고인돌]], [[집자리]], [[구덩이]], [[송국리식 집자리]], [[독무덤]], [[송국리식 토기]], [[돌덧널형 고인돌]], [[거창 대야리 고인돌군]], [[마디 자루 간 돌검]]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조현복 }} ==설명== 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 대야리 775에 위치한다. 합천댐 수몰 지구에 대한 조사의 일환으로 1986~1988년 3차례 조사하였다. 1차 조사에서는 [[고인돌|고인돌]] 4기, 2차 조사에서는 [[집자리|집자리]] 5기, 3차 조사에서는 집자리 15기, [[구덩이|구덩이]] 11기, [[독무덤|독무덤(甕棺墓)]] 2기가 확인되었다. 유적은 북쪽의 감토산(해발 520.5m), 남쪽 감악산 능선 사이를 가로 지르는 황강을 따라 길게 형성된 충적지 위에 입지한다. 집자리는 원형, 타원형, 방형, 말각 장방형 등 다양하다. 원형은 12기로, 2기를 제외하고 중앙에 타원형의 구덩이가 있는 [[송국리식집자리|송국리식]]이다. 타원형 구덩이 내부 양단에 [[기둥구멍|기둥 구멍]]이 있는 집자리는 길이 3.5~3.9m, 너비 3.1~3.6m이고, 타원형 구덩이 외부 양단에 배치된 것은 길이 5.5~7.7m, 너비 4.8~6.6m로 차이가 크다. 방형, 말각 장방형은 내부에 구덩이가 없다. 방형은 길이 3.2~4.14m, 너비 3.1~3.66m, 말각 장방형은 길이 7.22~7.3m, 너비 4.35~4.94m이다. 집자리 내부에는 얕은 [[구덩식화덕자리|구덩식(竪穴式) 화덕 자리]]와 집자리 외곽과 벽면 가까이에 기둥 구멍이 배치되었다. 바닥은 맨땅을 그대로 이용한 2기(3·4호)를 제외하면 모두 [[불다짐|불 다짐]] 처리를 하였다. 3호는 말각 장방형으로 크기는 12.6m, 너비 5.8m, 깊이 0.6m로 내부에 기둥 구멍과 화덕 자리로 추정되는 원형의 돌 두름(圍石式) 시설이 있다. 4·5호는 집자리 서쪽 일부가 파괴되었으며, 4호는 길이 3.57m, 너비 3.35m, 깊이 0.2m이다. 5호는 길이 6.72m, 너비 5.06m, 깊이 0.5m이며, 내부에 타원형 구덩이와 외곽에 기둥 구멍 1개, 동쪽과 서쪽 벽면에도 기둥 구멍이 확인되었다. 유물은 원형 집자리에서 외반 구연(外反口緣)의 [[송국리식토기|송국리식 토기]], [[바리모양토기|바리 토기(鉢形土器)]], 바리 모양의 [[붉은간토기|붉은 간 토기]], [[홈자귀|홈자귀(有溝石斧)]], [[슴베간돌살촉|슴베 간 돌살촉(有莖式石鏃)]], [[짧은배모양반달돌칼|짧은 배 모양(短舟形) 반달 돌칼]], [[돌끌|돌끌(石鑿)]], [[그물추|그물추]] 등이 출토되었다. 방형, 말각 장방형 집자리에서는 외반 구연의 [[항아리모양토기|항아리 모양 토기(壺形土器)]], 바리 토기, 붉은 간 토기, [[돌도끼|돌도끼(石斧)]], [[달도끼|달도끼(環狀石斧)]] 등이 출토되어, 유물 구성상 차이는 없다. 고인돌 4기는 모두 [[덮개돌|덮개돌(上石)]]이 있으며 1·2호는 [[매장주체부|매장 주체부(埋葬主體部)]]가 지하식인 [[돌덧널형고인돌|돌덧널형(石槨形)]]이고 3·4호는 덮개돌 아래 정형화된 매장 시설을 갖추고 있지 않는 유사 돌덧널형(類似石槨形)이다. [[무덤방|무덤방(墓室)]]의 크기는 1호는 길이 1.9m, 너비 0.55m, 깊이 0.85m이고, 2호는 길이 1.95m, 너비 0.5m, 깊이 0.75m이며, 모두 덮개돌(蓋石)이 있다. 벽석은 강돌(川石)로 쌓아 만들고 바닥은 1호는 납작한 자갈을 전면에 깔고 2호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깔았다. 유물은 1호에서 [[자루간돌검|자루 간 돌검(有柄式磨製石劍)]] 1점, 2호에서 [[마디자루간돌검|마디 자루 간 돌검(有節式磨製石劍)]] 1점과 슴베 간 돌살촉 42점이 출토되었다. 특히 2호 출토 간 돌검은 송서동 고인돌, [[양평상자포리고인돌|상자포리]] 4호 고인돌 출토품과 유사하다. 독무덤은 수직으로 안치된 독널의 아가리 위에 덮개돌을 덮은 형태(石蓋直置單甕式)이다. 1호의 [[묘광|무덤 구덩이(墓壙)]]는 원형이며 지름 0.7m, 깊이 0.2m이다. 바닥에는 15㎝ 내외의 깬돌 2매를 깔고 무덤 구덩이와 독널 사이의 공간에는 깬돌 6매를 채워 넣었다. 독널은 송국리식 토기와 유사하며 중앙부에 구멍이 있다. 크기는 높이 37.1㎝, 바닥 지름 7.6㎝이며 뚜껑돌의 설치 여부는 훼손으로 알 수 없다. 2호의 뚜껑돌은 길이 0.42m, 너비 0.35m, 두께 0.15m의 판돌(板石)을 이용하였으며, 독널의 추정 높이는 0.45m, 입지름 0.2m, 바닥 지름 0.1m이다. 내부에서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대야리 유적은 주변으로 [[거창무릉리산포고인돌군|산포 고인돌]], [[합천역평고인돌|역평 고인돌]] 등이 떼지어 조성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대규모의 집자리가 조성된 마을 유적이다. 유적의 연대는 집자리 14호의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을 통해 2630±110 BP(보정 연대 기원전 680년)로 확인되었다. ==조사정보== {|class="listtable" ! class="col-type"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발굴조사 || 1986년 11월 13일~1987년 06월 23일 || 거창, 합천 큰돌무덤 || 1987 || 동의대학교박물관 |- | 발굴조사 || 1987년 11월 07일~1987년 12월 30일 || 대야리주거지Ⅰ || 1988 || 동의대학교박물관 |}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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