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주 메뉴
주 메뉴
사이드바로 이동
숨기기
둘러보기
대문
최근 바뀜
임의의 문서로
미디어위키 도움말
한국고고학사전
검색
검색
보이기
로그인
개인 도구
로그인
600-0580 문서 원본 보기
문서
토론
한국어
읽기
원본 보기
역사 보기
도구
도구
사이드바로 이동
숨기기
동작
읽기
원본 보기
역사 보기
일반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
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
특수 문서 목록
문서 정보
보이기
사이드바로 이동
숨기기
←
600-0580
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관리자
.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DISPLAYTITLE:대모산 유적(서울 大母山遺蹟)}}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대모산 유적 | 이칭별칭=서울 대모산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서울특별시 강남구 일원동 산63-38 일원 | 성격=집자리 | 키워드=[[집자리]], [[항아리 모양 토기]], [[덧띠 토기]], [[조갯날 돌도끼]], [[홈자귀]], [[갈판]]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구준모 }} ==설명== 서울특별시 강남구 일원동 산63-38 일원에 위치한다. 1999년 서울 종합 방재 센터 119 시스템 무선 통신망 기지국 장비 설치 사업의 일환으로 시굴 조사하여 [[집자리|집자리]] 1기가 확인되었다. 대모산(해발 293m) 정상부에서 서편으로 능선을 따라가다 헬기 착륙장을 지나 서편 약 50m 지점에 위치한다. 북서편 3.4km 지점에 [[서울역삼동유적|서울 역삼동 유적]]의 연접한 능선 하단부에 [[서울자곡동유적|서울 자곡동 유적]]이 있다. 집자리가 위치한 능선부(해발 279m)를 제외한 주변 사면은 모두 경사가 급한 지형으로 서울시 주변을 조망하기 좋은 높은 지대이다. 집자리의 잔존 형태는 평면 반원형으로 남벽 일부만이 남아 있었는데, 경사면 아래쪽은 후대(後代)에 성벽을 축조하는 과정에서 훼손되었고, 북벽과 서벽은 나무 뿌리 등으로 벽과 바닥이 훼손된 상태였다. 남아 있는 바닥면은 길이 2.4m, 너비 1.9m 정도로 원래의 형태는 말각 방형 내지 장방형으로 추정된다. 바닥을 평탄하게 정지하기 위해 층 일부를 매립하여 조성하였으며 내부 시설은 남서벽에서 기둥 구멍 1개가 확인 되었다. 유물은 주로 남서벽에서 출토되었는데, 토기는 바리 모양(鉢形)에 원형의 [[덧띠토기|덧띠 토기(粘土帶土器)]], [[항아리모양토기|항아리 모양 토기(壺形土器)]], 석기는 [[조갯날돌도끼|조갯날 돌도끼(蛤刃石斧)]], [[홈자귀|흠자귀(有溝石斧)]], [[갈판|갈판(砥石)]] 등이 출토되었다. 제한적인 조사로 인해 유구의 양상이 온전히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대모산 유적은 서울 중심부에서는 흔치 않은 고지성 주거 유적으로 [[남양주수석리유적|남양주 수석리 유적]], [[서울아차산유적|서울 아차산 유적]], [[안성반제리유적|안성 반제리 유적]], [[부여교성리유적|부여 교성리 유적]] 등 주변 고지성 주거 유적과의 상호 비교를 통해 덧띠토기 문화의 성격을 밝히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유적정보
(
원본 보기
)
600-0580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