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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대각리 유적(浦項 代覺里遺蹟)}}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대각리 유적 | 이칭별칭=포항 대각리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대송면 대각리 산54-4 일원 | 성격=복합유적 | 키워드=[[집자리]], [[화덕 자리]], [[달도끼]], [[숫돌]], [[돌대팻날]], [[움무덤]], [[민무늬 토기]]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배군열 }} ==설명==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대송면 대각리 산54-4 일원에 위치한다. 포항시 관내 국도 대체 우회 도로(문덕-우복)에 포함되어 2004~2005년 Ⅰ·Ⅱ구역으로 나누어 조사하여, Ⅱ구역에서 [[집자리|집자리]] 13기 및 [[삼국시대|삼국]]~근·현대의 무덤이 다수 확인되었다. Ⅱ구역은 운제산(해발 479.5m)에서 남서쪽으로 뻗어 내린 나지막한 구릉에 입지하며, 북쪽에는 거실들이 펼쳐져 있고 남쪽에는 칠성천이 북류(北流)하여 동해로 흘러간다. 집자리는 능선부를 따라 위치하며, 1·2호는 북쪽 해발 55m에 조성되었고, 나머지는 해발 45~35m에 무리를 이루고 있다. 집자리간 중복 양상은 없으며, 출토 유물이 적어 단기간 존속한 마을로 판단된다. 유구는 후대의 지형 변화로 유실되어 완전한 형태는 알 수 없다. 내부 시설은 [[벽도랑|벽 도랑(壁溝)]]과 [[기둥구멍|기둥 구멍]]이 확인되며, 2호에서만 [[화덕자리|화덕 자리]]가 확인되었다. 집자리는 대부분 화재로 폐기되었다. 5호는 평면 방형으로 길이 5.6m, 너비 4.22m, 깊이 0.45m이며, 벽 가장자리를 따라 확인된 불탄 흙과 목탄(木炭)이 남아 있다. 남쪽 바닥면이 북쪽보다 약 10㎝ 비스듬하게 단을 주어 내부 공간을 분할하였다. 벽 도랑은 너비 0.2m, 깊이 0.17m로 북쪽 벽면을 따라 ‘ㄱ’자 모양으로 조성하였다. 기둥 구멍은 바닥에 2개, 벽 도랑 내 5개가 등 간격으로 배치되었다. 유물은 [[달도끼|달도끼(環狀石斧)]], [[숫돌|숫돌(砥石)]], [[돌대팻날|돌대팻날(扁平片刃石斧)]]이 출토되었다. 8호는 장방형으로 길이 6.18m, 너비 3.2m, 깊이 0.5m이며, 벽 가장자리와 내부, 바닥면에 목탄 및 불탄 흙이 한 벌 깔려져 있었다. 벽 도랑은 북쪽 벽면을 따라 ‘ㄱ’자 모양으로 확인된다. 남쪽 모서리에서 사면 아래 방향으로 [[외부돌출구|외부 돌출구(外部突出溝)]]가 길이 0.55m, 너비 0.18m로 남아 있으나, [[조선시대|조선 시대]] [[움무덤|움무덤(土壙墓)]]에 의해 일부 결실되었다. 유물은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 바닥 2점과 불명 석기(不名石器) 3점이 출토되었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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