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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농경(農耕)}} {{개념정보 | 한글표제어=농경 | 시대=청동기 시대 | 관련 지역=금강 유역 중심의 호서·호남·경남 지역 | 관련 유적=대전 괴정동유적, 논산 마전리 유적, 대구 동천동 유적, 안동 광평리 유적, 보령 관창리 유적, 대구 동호 택지 개발 지구, 보성 조성리 유적, 진주 창촌리 고분군, 창원 진동리 유적, 대구 태전동 유적, 대구 동호동 유적, 가평 이곡리 유적, 창원 신촌리·망곡리 유적, 부여 송학리 유적, 부여 나복리 유적, 부여 노화리 유적, 울주 대안리·발리 유적, 울주 굴화리 유적, 춘천 천전리 유적, 울주 서부리 남천 유적 | 키워드=[[논농사]], [[밭농사]], [[생계 경제]], [[탄화 작물]], [[돌낫]], [[반달 돌칼]], [[삼각 돌칼]], [[농경문 청동기]], [[따비]], [[괭이]], [[송국리 문화]], [[수로]], [[저수 시설]]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윤호필 }} ==설명== 농경, 농사, 농업은 작물 생산 활동 전반에 대한 포괄적인 개념으로 사용되며, 이중 농업이 보다 넓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농경은 [[논농사|논농사]]와 [[밭농사|밭농사]]를 통틀어 가리키는 것으로 주로 식량 생산 활동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으며 주로 초기 단계의 작물 생산 활동의 일컫는 용어로 사용된다. 한반도에서 농경은 [[신석기시대|신석기 시대]]에 시작되어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에는 [[생계경제|생계 경제]]의 주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신석기시대농경|신석기 시대 농경]]은 잡곡을 주로 한 밭농사였지만, 청동기 시대가 되면 새롭게 벼농사가 이루어져 밭농사와 더불어 중요한 생계 기반이 되었다. 농경이라는 주제는 오래전부터 주요한 관심을 끌었지만, 1990년대 후반에 와서 실제 논·밭 등이 조사되면서 농경 연구에 일대 전환기를 맞이하였다. 농경의 발달은 사회적, 정치적 변화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어 청동기 시대 사회를 변화시키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청동기 시대에는 쌀·기장·조·콩이 주류를 이루고 밀·보리·수수·팥·녹두·들깨·피 등 다양한 작물이 재배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청동기 시대에 들어와서 농경이 본격화되면서 밭은 물론 논도 확인된다. 밭은 강변 충적지의 자연제방 사면과 단구면(段丘面)에 조성되며, 이랑과 고랑이 확인되고 논은 강변 충적지의 배후습지, 개석 곡저(開析谷底)를 이용하고 유적에서는 논둑이나 단차로 구획된 논면·용수로·보 등이 조사되었다. 청동기 시대 [[송국리문화|송국리 문화]]의 등장과 발달로 사회 전반적으로 많은 변화가 일어나는 늦은 시기에는 농경 활동에도 다양한 변화들이 일어났다. 농경에 있어서 가장 큰 변화는 논경작의 확대 및 대규모 밭 경작지의 등장이다. 또한, 농경지도 이른 시기에 비해 훨씬 빠른 속도로 확대되는 경향을 보인다. 논 경작지의 확대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송국리 문화의 확산과 밀접한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송국리 문화는 금강 유역을 중심으로 하여 호서·호남 지역과 경남 지역까지 넓은 범위에 걸쳐 형성되며 농경은 도작 농경이 중심이 된다. 농경이 바탕이 되어 생계 경제가 안정화되면서 취락 내 다양한 요소들이 변화하는데 취락의 발달과 농경은 매우 밀접한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청동기 사회가 복합 사회(complex society)로 발전해 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집자리|집자리]]나 밭, [[저장구덩이|저장 구덩이]] 등에서 벼, 보리, 콩, 팥 등 다양한 [[탄화작물|탄화 작물]]들이 출토되어 청동기 시대에 본격적으로 농경이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 있으며, 특히 송국리 문화 단계에는 집약적인 수전 농경이 이루어 지면서 벼농사의 비중이 한층 높아진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2000년대 이후에 벼농사와 관련된 논과 [[수로|수로]] 등 다양한 유구들이 조사되면서 청동기 시대 논농사가 본격화되고 벼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진 것으로 보고 있다. 도구에 있어서 수확구인 돌칼과 [[돌낫|돌낫]] 등이 출토되며 특히 [[반달돌칼|반달 돌칼]]과 [[삼각형돌칼|삼각 돌칼]]은 당시 수확용 도구로 농경과 관련된 직접적인 유물이다. 특히 농경과 관련된 유물 가운데 [[대전괴정동유적|대전 괴정동]] 출토 [[농경문청동기|농경문 청동기]]는 당시 농경의 풍경을 묘사한 유물로 [[따비|따비]]를 이용하여 밭을 일구는 장면과 [[괭이|괭이]]로 밭을 일구는 장면이 잘 묘사되어 있으며 한 쪽에는 수확한 농산물을 토기에 보관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러한 농경문 청동기는 농경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의례를 행하던 의례용구로 볼 수 있다. 수리 시설은 신석기 시대 만기부터 보이는데 이때는 자연스럽게 흐르는 물의 방향을 방해하지 않게 설치하지만, 청동기 시대에는 수리 시설 또한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청동기 시대의 전반대 늦은 시점에는 충적 대지에 [[구|도랑]]으로 구획한 농경지와 함께 작은 수로와 저수지, [[집석유구|돌더미 유구(集石遺構)]] 등이 발견되며, 후반대에 들어서면 저지대로 수전 농경을 전개하면서 관개용 수리 시설물과 수리 체계가 점진적으로 변화, 발전해 간다. 지금까지 수리 시설은 주로 충청남도와 경상도를 중심으로 확인되었는데 수리 시설의 구조와 축조 재료를 보면 집수 및 [[저수시설|저수 시설]]인 [[우물|우물]], [[둠벙|둠벙]] 등이 있으며, 관개용 저수 및 도수 관련 보와 도수 시설(導水施設)인 용수로와 배수로로 구분된다. 우물 및 둠벙은 [[논산마전리유적|논산 마전리]], [[대구동천동유적|대구 동천동]]에서 확인되었으며, [[안동광평리유적|안동 저전리]]에서는 제방이 확인되었다. 관개용 저수 및 도수와 관련된 보는 하천을 막아 새로운 수로를 만들어 인근 경작지에 물을 공급하는 수리 시설의 하나로 인위적으로 물길을 차단해 수위가 상승하고, 물을 특정 방향으로 유도하는 것이 특징이다. 논산 마전리, [[보령관창리유적|보령 관창리]], [[대구동호택지개발지구|대구 동호 택지 개발 지구]], [[보성조성리유적|보성 조성리]], [[진주창촌리고분군|진성 창촌]], 대구 동천동, [[창원진동리유적|마산 진동]], [[대구태전동유적|대구 매천동]], [[대구동호동유적|동호동]], [[가평이곡리유적|이곡리]] 등에서 확인되었다. 도수 시설인 용수로와 배수로는 논산 마전리 목통, [[창원신촌리.망곡리유적|마산 망곡리]], [[부여송학리유적|부여 송학리]], [[부여나복리유적|나복리]], [[부여노화리유적|부여 노화리]], [[울주대안리.발리유적|울산 발리]], [[울주굴화리유적|백천]], [[춘천천전리유적|춘천 천전리]], [[울주서부리남천유적|울주 서부리 남천]] 등에서 확인되었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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