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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남송리·성곡리 유적(浦項 南松里·城谷里遺蹟)}}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남송리·성곡리 유적 | 이칭별칭=포항 남송리·성곡리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흥해읍 남송리 산204, 1006, 성곡리 149 일원 | 성격=복합유적 | 키워드=[[집자리]], [[도랑]], [[구덩이]], [[화덕 자리]], [[구멍무늬 토기]], [[그물추]], [[반달 돌칼]], [[민무늬 토기]], [[버들잎 모양 돌살촉]], [[역삼동 유형]]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배군열 }} ==설명==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흥해읍 남송리 산204, 1006, 성곡리 149 일원에 위치한다. 일반폐기물 매립장 확장에 앞서 2004년 조사하여(남송리 산204) [[집자리|집자리]] 5기, [[구|도랑(溝)]] 9기, [[구덩이|구덩이]] 6기를 확인하였다. 이후 영일만 신항 배후 도로 건립으로 2008~2009년 성골리 149(성곡리 Ⅰ 유적), 남송리 1006(성곡리Ⅱ 유적)을 조사하여 집자리 5기, 도랑 9기, [[기둥구멍군|기둥 구멍군(柱穴群)]] 1기, [[기둥구멍|기둥 구멍]] 14개를 확인하였다. 유적은 반경 1.2㎞에 입지한다. 남송리 산204 유적은 천마산(해발 89m)에서 북서쪽으로 뻗은 구릉의 남서사면에 입지한다. 집자리는 사면부 유실로 온전하지 않으나 방형 또는 세장방형으로 추정된다. 그 중 3호는 길이 12.26m, 너비 4.26m, 깊이 0.53m로 가장 규모가 크다. 기둥 구멍의 정형성은 확인되지 않으며, 단면은 ‘U’자, ‘V’자 모양이다. [[화덕자리|화덕 자리]]는 [[구덩식화덕자리|구덩식(竪穴式)]]으로 짧은 벽면에 치우쳐 확인된다. 2호는 원형의 화덕 자리 2개, 3호는 원형과 타원형의 화덕 자리가 확인되었다. [[벽도랑|벽 도랑(壁溝)]]은 ‘ㄱ’, ‘ㄷ’, ‘ㅡ’자 모양이 확인되며, 3호에서는 2중의 벽 도랑이 설치되어 벽체의 기초 홈과 배수의 기능을 동시에 한 것으로 판단된다. 바닥은 모두 맨땅이며, 3호는 점토 다짐 처리하였다. 집자리는 모두 화재로 폐기되었으며 출토 유물은 [[구멍무늬토기|구멍무늬 토기(孔列土器)]]와 [[그물추|그물추]]가 확인되었다. 성곡리Ⅰ 유적은 집자리 2기, 도랑 1기, 기둥 구멍 1개가 확인되었다. 1호는 길이 4m, 너비 3.2m, 깊이 0.24m이며, 장방형으로 추정된다. 기둥 구멍은 정형성 없이 바닥면(床面)에서 2개가 확인되며, 화덕 자리는 짧은 벽 면에 약간 치우쳐 위치하며, 구덩식이다. 타원형에 가까우며, 길이 0.33m이다. 바닥은 적갈색으로 소결(燒結) 되었다. 벽 도랑은 ‘ㄷ’자 모양으로 남아 있으며, 너비 0.08~0.15m, 깊이 0.08m이다. 벽 도랑 내 기둥 구멍은 원형으로 지름 0.1m이다. 바닥면은 맨땅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내부에서 확인되는 불탄 흙(燒土) 및 목탄(木炭)을 통해 화재로 폐기되었음을 알 수 있다. 유물은 [[반달돌칼|반달 돌칼]] 1점이 출토되었다. 성곡리Ⅱ 유적은 묘봉산 북쪽 가지능선의 사면부에 입지하며, 서쪽으로는 초곡천이 북류한다. 집자리 3기, 도랑 8기, 기둥 구멍 13개가 확인되었다. 집자리는 도랑을 파괴하고 축조되었으며, 2호만이 온전하게 남아있다. 2호는 장방형으로 길이 4.08m, 너비 3.3m, 깊이 0.24m이며, 면적은 13.7㎡이다. 기둥 구멍은 바닥면에서 5개가 확인되어 6주식(柱式)이다. 화덕 자리는 북동쪽 짧은 벽에 약간 치우쳐 위치하며, 구덩식이다. 타원형에 가깝고 길이 0.72m, 너비 0.44m이다. 벽 도랑은 네 벽을 따라 ‘ㅁ’자 모양으로, 너비 0.14~0.35㎝, 깊이 0.16m이다. 벽 도랑 내 기둥 구멍은 26개가 일정한 간격으로 조성되었다. 배수를 위해 벽 도랑에서 외부로 빠져나가는 [[외부돌출구|외부 돌출구(外部突出溝)]]가 확인된다. 바닥면은 불로 다졌으며, 화재로 폐기되어 내부에서 불탄 흙 및 목탄이 확인되었다. 유물은 민무늬 토기 항아리와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 편, [[버들잎모양돌살촉|버들잎 모양 돌살촉(柳葉形石鏃)]]이 출토되었다. 유적의 연대는 집자리 평면 형태 및 구조, 내부 출토 유물로 보았을 때 전기 이른 시기로 판단되며, 초곡천 중류역에 형성된 [[역삼동유형|역삼동 유형]]의 소규모 취락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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