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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남산리 유적(公州 南山里遺蹟)}}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남산리 유적 | 이칭별칭=공주 남산리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남산리 산22 일원 | 성격=고분 | 키워드=[[움무덤]], [[돌뚜껑움무덤]], [[돌널무덤]], [[독무덤]], [[송국리식 토기]]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이현숙 }} ==설명== 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남산리 산22 일원에 위치한다. 송국리 유적과 인접하여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1971년에 발굴 조사하여 [[움무덤|움무덤(土壙墓)]], [[돌뚜껑움무덤|돌뚜껑움무덤(石蓋土壙墓)]] 24기, [[돌널무덤|돌널무덤(石棺墓)]] 1기, [[독무덤|독무덤(甕棺墓)]] 3기를 확인하였다. 이후 1987년에 공주대학교박물관이 백제 시대 무덤과 함께 2기의 청동기 시대 독무덤을 추가로 확인하여 독무덤은 모두 5기이다. 유적 주변 북쪽은 서-남으로 달리는 구릉들이 금강에 연하여 길게 드리워져 있고 동쪽으로는 약 8㎞ 거리에 호암산이 보일 뿐 대부분 지역은 평야 지대로 곳곳에 130~140m 높이의 구릉만이 산재되어 있다. 움무덤은 돌뚜껑(石蓋)이 덮여 있는 것으로 상하 이단으로 구덩이(土壙)를 만든 것과 단순 구덩이의 형태로 축조된 것으로 구분된다. 이단 구덩이를 갖춘 것은 8기이고 단순 움무덤은 16기인데 단순 구덩이도 지표면 유실을 고려하면 이단 구덩이를 갖추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돌널무덤은 B지역으로 구분된 지역에서 조사되었고, 돌뚜껑 움무덤과 인접하여 위치한다. 무덤방(墓室)은 화강암 풍화층을 2단으로 굴광하여 장방형으로 조성하였다. 하단의 무덤 구덩이(墓壙)는 길이 2.2m, 너비 1.4m, 깊이 0.35m 내외의 크기이다. 돌널은 얇은 판돌(板石)형 석재를 조립하였으며, 바닥에는 홈 모양의 요갱(腰坑)이 있기도 하다. 독무덤은 생토면을 깊게 굴착하고, 그 안에 [[송국리식토기|송국리식 토기]]를 세워 축조하였다. 독널의 덮개는 부정형의 석재를 사용한 것과 토기 편을 사용한 것으로 구분된다. 1987년 공주대학교에서 조사한 독널은 석비레 암반층을 1m 내외의 너비로 넓게 파서 무덤 구덩이를 조성하였으며, 무덤 구덩이는 바닥으로 내려갈수록 좁아지게 파다가 바닥은 완전히 오므려 좁혔다. 남산리 유적은 돌널무덤과 돌뚜껑 움무덤, 그리고 송국리식 토기를 사용한 독무덤으로 구성된 매장 유적이다. 유적의 시기는 [[부여송국리유적|송국리 유적]]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으며, 더불어 이 시기의 문화 양상을 파악하는데 귀중한 자료를 제시한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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