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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기산리 유적(星州 基山里遺蹟)}}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기산리 유적 | 이칭별칭=성주 기산리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경상북도 성주군 용암면 기산리 353-5, 399-6 일원 | 성격=복합유적 | 키워드=[[집자리]], [[도랑]], [[민무늬 토기]], [[숫돌]], [[가락바퀴]], [[기둥 모양 외날 돌자귀]], [[삼각 덧띠 토기]], [[굽다리 토기]], [[바리 토기]], [[간 돌검]]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윤호필 }} ==설명== 경상북도 성주군 용암면 기산리 353-5, 399-6 일원에 위치한다. 성주 용암~선남 간 도로 4차로 건설에 앞서 2011년 조사하여, 1구역에서 [[초기철기시대|초기 철기 시대]] [[집자리|집자리]] 3기, [[구|도랑(溝)]] 1기, 2구역에서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 도랑(溝) 7기, [[기둥구멍군|기둥 구멍군(柱穴群)]] 2기가 확인되었다. 유적은 기성리 마을 남동쪽에 위치한 낮은 구릉 말단부(2구역)와 그 사이 곡간지(1구역)에 입지하며, 남쪽에는 넓은 충적 대지와 신천이 위치한다. 1구역의 도랑은 여러 기의 도랑이 합쳐진 형태이며, 길이 2~4m, 너비, 0.16~1.06m, 깊이 0.05~0.15m이다. 내부에는 기둥 구멍과 불탄 흙, 목탄(木炭)이 확인되었다. 집자리는 상부가 모두 파괴되고 바닥에 [[벽도랑|벽 도랑(壁溝)]]과 [[기둥구멍|기둥 구멍]] 일부만 남아 있다. 벽 도랑은 ‘ㄱ’자 모양이며, 3·4호는 중복되어 있다. 벽 도랑은 길이 5~8m, 너비, 0.15~0.8m, 깊이 0.07~0.15m이다. 4호에서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 편, [[숫돌|숫돌(砥石)]], 돌 [[가락바퀴|가락바퀴(紡錘車)]], [[기둥모양외날돌자귀|기둥 모양 외날 돌자귀(柱狀片刃石斧)]] 등이 출토되었다. 이외에 [[삼각덧띠토기|삼각 덧띠 토기(三角形粘土帶土器)]] 편, [[굽다리토기|굽다리 토기(豆形土器)]] 편, 석기 등이 수습되었다. 2구역의 도랑은 크게 ‘ㄱ’자(1기),‘ㅡ’자 모양 (6기)으로 구분되며, 길이 5.25~15m, 너비, 0.45~2m, 깊이 0.08~0.38m이다. 유물은 29호에서 [[바리모양토기|바리 토기(鉢形土器)]] 1점, [[간돌검|간 돌검]] 손잡이 편 1점이 출토되었다. 기둥 구멍군은 크기에 따라 소형(10㎝ 내외)과 중형(20~40㎝ 내외)으로 구분되나 정형성이 없이 정확한 성격은 알 수 없다. 유적은 청동기 시대와 초기 철기 시대에 조성되었다. 특히, 1구역 초기 철기 시대 집자리와 출토 유물은 이 지역에서 보기 드문 것으로, 경상북도 내륙 지역의 초기 철기 시대의 문화상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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