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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금탄리 유적(平壤 金灘里遺蹟)}}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금탄리 유적 | 이칭별칭=평양 금탄리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북한 | 소재지=평양직할시 사동구역 금탄리 | 성격=복합유적 | 키워드=[[집자리]], [[무시설식 화덕자리]], [[항아리 모양 팽이토기]], [[바리 모양 팽이 토기]], [[팽이 토기 시기]]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장호수 }} ==설명== 평양직할시 사동구역 금탄리에 위치한다. 대동강 중류의 한 지류인 남강이 합류하는 지점에서 남강의 좌안을 따라 1.6㎞ 정도 올라온 곳의 하안 단구에 해당한다. 1955년에 사회과학원 고고학 및 민속학연구소에서 발굴 조사하여, 금탄리 유적 3문화층에서 [[집자리|집자리]] 4기를 확인하였고 그 밖에 [[신석기시대|신석기 시대]] 집자리와 고대의 [[벽돌무덤|벽돌무덤(塼築墳)]] 1기를 확인하였다. 집자리는 평면 장방형으로 바닥은 진흙을 펴서 다짐 처리하였다. Ⅰ호는 잔존 길이 3.8m, 너비 4m 정도로 바닥은 벽면을 따라 0.12~0.15m 높이의 단(段)을 두고 그로부터 내부의 바닥 전면은 진흙으로 다짐 처리하였다. 소형의 [[기둥구멍|기둥 구멍]]은 단과 내부에 다짐 처리한 경계 부분을 따라 배치되어 있다. Ⅱ호는 길이 6m, 너비 3.5m로 바닥에 통나무 재가 있으나, 내부 시설은 확인 되지 않았다. Ⅲ호는 잔존 길이 5m, 너비 4m이며, 내부 중앙에 지름 0.3m의 기둥 구멍 2개와 서쪽에 지름 0.1m의 기둥 구멍 1개가 있다. Ⅷ호는 길이 10m, 너비 6m, 깊이 0.2m로 규모가 큰 편이다. 벽선을 따라 단(段)이 지고 그로부터 내부 바닥에 진흙 다짐 처리를 하여 Ⅰ호와 유사하다. 바닥에는 작은 기둥 구멍이 네 벽을 따라 배치되어 있고, 남벽 동쪽에 치우쳐 0.8m 정도 끊어진 곳에서는 내부 쪽에 돌 2개가 대칭으로 놓여져 있어 출입구 시설로 추정된다. 바닥면을 그대로 이용한 [[무시설식화덕자리|무시설식(無施設式)의 화덕 자리]]가 있다. 집자리 중앙에 0.5m 정도 너비로 바닥보다 높여진 부분이 있는데 이는 방을 2칸으로 만들기 위한 시설이거나 증축(增築)의 흔적으로도 추정된다. 유물은 겹아가리(二重口緣)에 [[단사선문|짧은 빗금무늬(短斜線文)]]가 새겨진 [[항아리모양팽이토기|항아리 모양(壺形)]]·[[바리모양팽이토기|바리 모양(鉢形)의 팽이 토기(角形土器)]], [[슴베간돌검|슴베 간 돌검(有莖式磨製石劍)]], [[간돌살촉|간 돌살촉]], [[합인석부|조갯날 돌도끼(蛤刃石斧)]], [[돌대팻날|돌대팻날(扁平片刃石斧)]], [[돌창|돌창(石槍)]] 끝 편, [[물고기모양반달돌칼|물고기 모양]] 및 [[배모양반달돌칼|배 모양(舟形) 반달 돌칼]], [[가락바퀴|가락바퀴]], [[청동끌|청동 끌(銅鑿)]], [[돌돈|돌돈(石貨)]] 등이 출토되었다. 유적 언저리에는 대동강을 끼고 선사 유적들이 많이 있는데 [[팽이토기시기|팽이 토기 시기]]의 유적 가운데 처음으로 발굴되어 팽이 토기와 변형(變形) 팽이 토기가 함께 나오는 사실을 밝히게 된 것이 중요하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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