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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금장리 유적(慶州 金丈里遺蹟)}}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금장리 유적 | 이칭별칭=경주 금장리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경상북도 경주시 현곡면 금장리 156-13, 439, 산9 일원 | 성격=복합유적 | 키워드=[[민무늬 토기]], [[집자리]], [[구덩이]], [[바리 토기]], [[사발 모양 토기]], [[손잡이 달린 토기]], [[붉은 간 토기]], [[돋을띠무늬 토기]], [[구멍무늬 토기]], [[골아가리 토기]], [[간 돌살촉]], [[가락바퀴]], [[반달 돌칼]], [[숫돌]], [[갈판]], [[간 돌도끼]], [[돌끌]], [[둘레 도랑]], [[둥근 덧띠 토기]], [[굽다리 토기]], [[독 모양 토기]], [[흔암리식 토기]], [[검단리식 토기]]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신영애 }} ==설명== 경상북도 경주시 현곡면 금장리 156-13, 439, 산9 일원에 위치한다. 1978년 국립문화재연구소와 경주박물관이 [[신라|신라 시대]] [[가마터|가마터(瓦窯址)]]를 발굴하던 중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가 확인되어 서울대학교박물관이 유물을 정리하고 보고하였다(금장리 무문토기 유적). 이후 공동 주택 건설에 앞서 2004~2006년 성림문화재연구원이 금장리 439 유적을 조사하였다. 금장리 산9 유적은 경주 청령-현곡 간 지방 도로 공사로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이 조사하였으며, 금장리 156-13 유적은 금장-하구 간 지방 도로 공사로 2011~2013년 성림문화재연구원이 조사하였다. 유적은 형산강을 향해 서에서 동으로 뻗어내린 산지 사이에 형성된 충적지대에 입지한다. 금장리 439 유적은 [[집자리|집자리]] 8기, [[구덩이|구덩이]] 3기, [[돌더미|돌더미(集石)]] 2기가 확인되었다. 집자리는 장방형 5기, 방형 3기로 구분된다. 4호는 장방형으로 길이 6.25m, 너비 4.65m, 깊이 0.29m이다. 화재로 폐기되어 벽과 바닥에서 다량의 목탄과 불탄 흙덩이가 확인되었으며, 바닥은 맨땅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기둥구멍|기둥 구멍]]은 벽을 따라 양 모서리와 중앙에 4개가 설치되었다. 방형 중 가장 큰 2호는 길이 4.93m, 너비 3.93m, 깊이 0.12m로, 자연 폐기되었다. 북쪽에 치우쳐 [[무시설식화덕자리|무시설식(無施設式) 화덕 자리]] 1개가 확인되었다. 기둥 구멍은 장축 벽을 따라 5개, 2개가 확인되었지만 정형성은 없다. 바닥은 점토로 다졌다. 구덩이와 돌더미는 부정형과 원형으로, 집자리와 관련된 야외 화덕 자리 또는 부속 시설로 추정된다. 유물은 [[바리모양토기|바리 토기(鉢形土器)]], [[완형토기|사발 모양 토기(碗形土器)]], [[손잡이달린토기|손잡이 달린 토기(把手附土器)]], [[붉은간토기|붉은 간 토기]], [[돋을띠무늬토기|돋을띠무늬 토기(突帶文土器)]], [[구멍무늬토기|구멍무늬 토기(孔列土器)]], [[골아가리토기|골아가리 토기(口脣刻目土器)]], [[간돌살촉|간 돌살촉]], [[가락바퀴|가락바퀴]], [[반달돌칼|반달 돌칼]], [[숫돌|숫돌(砥石)]], [[갈판|갈판]] 등이 출토되었다. 금장리 산9 유적은 집자리 2기, 구덩이 1기, [[구|도랑(溝)]] 1기가 확인되었다. 1호는 방형으로 길이 3.58m, 너비 2.98m, 깊이 0.58m이며, 북쪽 모서리에 구덩식 [[외부돌출구|외부 돌출구(外部突出溝)]] 가 딸려 있다. 화덕 자리는 중앙에 구덩이를 타원형으로 얕게 파서 설치하였다. 바닥에 목탄이 깔려 있어 화재 폐기로 추정된다. 유물은 [[짧은빗금구멍무늬토기|짧은 빗금 구멍무늬 토기(短斜線孔列土器)]], 골아가리 토기(口脣刻目土器), [[간돌도끼|간 돌도끼]], [[돌끌|돌끌(石鑿)]] 등이 출토되었다. 금장리 156-13 유적은 집자리 1기, [[기둥건물터|기둥 건물터(掘立柱建物址)]] 1기, [[주구|둘레 도랑(周溝)]] 1기, 구덩이 1기, 도랑 1기가 확인되었다. 집자리는 조사지 경계에 위치하여 일부만 확인되었으며, 길이 3.6m, 너비 1.53m, 깊이 0.05m이다. 기둥 구멍은 긴 벽을 따라 1.5m 간격으로 4개가 확인되었다. [[벽도랑|벽 도랑(壁溝)]] 은 ‘ㄱ’자 모양으로 동쪽 모서리에서 외부 돌출구와 이어진다. 둘레 도랑은 원형으로, 길이 8.74m, 너비 7.66m이고, 도랑 너비는 0.56~0.84m이다. 중앙에는 바닥이 편평한 타원형 구덩이가 설치되어 있는데 상부가 삭평된 후 잔존한 [[매장주체부|매장 주체부(埋葬主體部)]]로 추정된다. 금장리 무문 토기 유적에서는 [[골아가리구멍무늬토기|골아가리 구멍무늬 토기(口脣刻目孔列土器)]], [[둥근덧띠토기|둥근 덧띠 토기(圓形粘土帶土器)]], [[굽다리토기|굽다리 토기(豆形土器)]], [[옹형토기|독 모양 토기(甕形土器)]], 손잡이 달린 토기(把手附土器) 등이 출토되었다. 유적은 집자리와 함께 강원 영서 지역과 동남해안 지역에서 주로 확인되는 도랑 모양 유구가 확인되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유적의 연대는 목탄의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을 통해 금장리 156-3 유적 집자리 1호 2610±40 BP(보정 연대 기원전 790년)로 확인되었고, 집자리의 구조 및 출토 유물로 [[흔암리식토기|흔암리식 토기]] 단계부터 [[검단리식토기단계|검단리식 토기]] 단계로 판단된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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