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주 메뉴
주 메뉴
사이드바로 이동
숨기기
둘러보기
대문
최근 바뀜
임의의 문서로
미디어위키 도움말
한국고고학사전
검색
검색
보이기
로그인
개인 도구
로그인
600-0325 문서 원본 보기
문서
토론
한국어
읽기
원본 보기
역사 보기
도구
도구
사이드바로 이동
숨기기
동작
읽기
원본 보기
역사 보기
일반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
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
특수 문서 목록
문서 정보
보이기
사이드바로 이동
숨기기
←
600-0325
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관리자
.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DISPLAYTITLE:그물 흔적 토기[網痕土器]}} {{개념정보 | 한글표제어=그물 흔적 토기 | 이칭별칭=망흔 토기 | 시대=청동기 시대 | 관련 유적=춘천 천전리 유적, 연천 삼거리 유적, 광주 신창동 유적, 진주 상촌리 유적, 진주 대평리 옥방 유적, 진주 대평리 어은 유적, 사천 늑도 유적 | 키워드=[[바리 토기]], [[항아리 모양 토기]], [[저장 구덩이]]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배진성 }} ==설명== 그물 흔적 토기(網痕土器)란 끈을 이용하여 [[토기|토기]] 표면을 그물망처럼 감싼 흔적이 남아 있는 토기이다. 끈의 흔적이 확인되는 토기의 종류로는 [[바리모양토기|바리 토기(鉢形土器)]]도 일부 있지만 주로 [[항아리모양토기|항아리 모양 토기(壺形土器)]]에서 확인된다. 크기는 높이 60㎝가 넘는 대형부터 20㎝ 이하의 소형까지 다양하며, 끈의 폭은 1㎝ 정도로 식물의 줄기를 이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집자리|집자리]] 등 생활 관련 [[유구|유구]]에서 출토되는데, 주로 집자리 안의 [[저장구덩이|저장 구덩이]]나 한쪽 모서리 및 벽면 부근에서 확인된다. 출토 유적은 중부 지역의 [[춘천천전리유적|춘천 천전리]]와 [[연천삼거리유적|연천 삼거리]], 호남 지역의 [[광주신창동유적|광주 신창동]], 영남 지역의 [[진주상촌리유적|진주 상촌리]]·[[진주대평리옥방유적|옥방]]·[[진주대평리어은유적|어은 지구 유적]] 등으로 거의 전국적인 분포를 보인다. 남해안의 [[사천늑도유적|사천 늑도 유적]]에서는 [[독무덤|독무덤(甕棺墓)]]으로 사용된 대형의 항아리에 끈 흔적이 있는데, 무덤으로는 유일한 사례이다. 토기에 씌운 그물망의 기능에 대해서는 다른 물체와의 접촉으로부터 토기를 보호하는 완충의 기능, 끈을 막대 등에 걸어 이동을 편리하게 하기 위한 기능 등이 추정된다. 용도에 대해 [[항아리모양토기|항아리 모양 토기]]는 입구가 좁기 때문에 주로 액체를 담는 용기로 생각되어 왔다. 대형의 항아리에 물을 담아 이동하기 위해서는 그물망이 필요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유적에서 출토되는 항아리 가운데 끈 흔적이 있는 것은 일부분이기 때문에 그물 흔적 토기는 특수한 용도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기도 한다. 이는 술을 담는 술 항아리였다는 견해인데, 고대 이집트 및 중국의 회화 자료에 이러한 사례가 있어 흥미롭다. 표면에 그물망을 씌운 용기는 비단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에 한정되지 않고 [[삼국시대|삼국 시대]]는 물론 그 이후 시대에도 계속해서 사용되었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개념정보
(
원본 보기
)
600-0325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