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주 메뉴
주 메뉴
사이드바로 이동
숨기기
둘러보기
대문
최근 바뀜
임의의 문서로
미디어위키 도움말
한국고고학사전
검색
검색
보이기
로그인
개인 도구
로그인
600-0232 문서 원본 보기
문서
토론
한국어
읽기
원본 보기
역사 보기
도구
도구
사이드바로 이동
숨기기
동작
읽기
원본 보기
역사 보기
일반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
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
특수 문서 목록
문서 정보
보이기
사이드바로 이동
숨기기
←
600-0232
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관리자
.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DISPLAYTITLE:교동 유적(江陵 校洞遺蹟)}}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교동 유적 | 이칭별칭=강릉 교동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교동 1813-1·1796-7 일원 | 성격=복합유적 | 키워드=[[탄화미]], [[집자리]], [[화덕자리]], [[기둥 구멍]], [[저장 구덩이]]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박영구 }} ==설명==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교동 1813-1·1796-7 일원에 위치한다. 교동 유적은 강릉시의 북서 편에 해당하는데, 태백산맥에서 뻗어 내린 해발 50m 미만의 낮은 구릉 지대에 입지한다.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 [[집자리|집자리]] 6기가 조사되었는데 그중 6호는 1~5호 집자리가 자리한 구릉에서 동으로 약 300m 떨어진 지점에서 확인되었다. 확인된 집자리의 평면 형태는 방형이 3기(1·4·6호), 장방형이 3기(2·3·5호)이다. 크기는 1호가 길이 9.6m, 너비 5m이며, 4호가 길이 14.5m, 너비 6m이고 6호가 길이 15.8m, 너비 5.4m, 2호가 길이 4m, 너비 4.1m 등이다. 바닥은 모두 진흙을 얇게 깔고 다졌다. 바닥에는 지붕과 벽체에 덮었던 갈대가 탄화된 채 남아있고 드문드문 발견되는 불탄 흙은 [[화덕자리|화덕 자리]]나 가옥 폐기 이후의 화재 등에 의한 것으로 추정된다. 내부 시설로는 화덕 자리, [[기둥구멍|기둥 구멍]], 벽도랑, [[저장구덩이|저장 구덩이]] 등이 확인되었고 대부분 출입구가 발견되지 않았다. 화덕 자리는 1호와 6호 집자리에서 확인되는데, 1호는 방형의 [[돌두름식화덕자리|돌 두름식(圍石式)]] 이며, 6호는 무시설식(無施設式)으로 3기가 집자리 중앙 축선을 따라 같은 간격으로 확인되었다. 1호와 5호에서는 안쪽에 판자(板子)를 세우고 판자와 벽선 사이에는 고운 점토로 뒤채움한 흔적이 보이는데, 이러한 일종의 제습용 홈은 영동 지역의 [[속초조양동유적|속초 조양동 유적]], [[강릉방내리유적|강릉 방내리]], [[양양포월리유적|양양 포월리 유적]] 등 능선 상에 위치한 청동기 시대 집자리에서 많이 발견되고 있다. 대부분 집자리에는 기둥 구멍이 잘 남아 있으며 2호와 5호에서 탄화된 기둥이 2개씩 확인되었다. 저장 구덩이는 대부분 모서리나 벽 쪽에 치우쳐서 1개 내지 3개가 발견되었다. 1호와 3호 집자리에는 작업대가 토기와 공반되고 있는데, 1호의 경우 저장 구덩이 옆에서 많은 양의 [[탄화미|탄화미(炭化米)]]가 출토되어 저장 구덩이를 중심으로 작업이나 조리 공간으로 이용되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교동 1호 집자리에서 출토된 수천 립의 탄화미 중 277립을 계측한 결과 길이는 4.26±0.32㎜, 너비는 2.59±0.2㎜, 두께는 1.9±0.14㎜이다. 탄화미의 너비는 1.65±0.12로 단립형의 자포니카에 속한다. 유물은 1호에서 겹아가리 짧은 빗금무늬(二重口緣短斜線文)의 [[깊은바리모양토기|깊은 바리 토기(深鉢形土器)]], 구멍무늬(孔列文)와 ‘X’자 모양의 [[단사선문|짧은 빗금무늬]]가 새겨진 [[외반구연토기|외반 구연 토기(外反口緣土器)]], 직립 구연(直立口緣) [[항아리모양토기|항아리 모양 토기(壺形土器)]], [[굽달린작은항아리|굽 달린 작은 항아리(臺附小壺)]] 등 다양한 기종의 토기가 출토되었으며, 5호의 겹아가리 톱니무늬(二重口緣鋸齒文)의 깊은 바리 토기, 직립 구연의 항아리 모양 토기, 바리, 굽 달린 작은 항아리 바닥 편의 출토 양상과 비슷하다. 나머지 집자리에서는 직립 구연의 항아리 모양 토기, 바리, 겹아가리 톱니무늬 토기, [[겹아가리토기|겹아가리 토기]] 등으로 구성된 양상을 보인다. 출토된 석기의 종류별 수량은 많지 않으나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 집자리에서 흔히 나오는 일반적인 석기가 망라되어 있으며, 삼각형 및 [[삼각오목돌살촉|삼각 오목 돌살촉(三角灣入石鏃)]], 물고기 모양(魚形)·장방형·배 모양(舟形) [[반달돌칼|반달 돌칼]], 방사선이 새겨진 [[가락바퀴|가락바퀴]], [[돌도끼|돌도끼(石斧)]]등 동북 지역 계통의 특징을 지닌다. 교동 유적은 장방형의 대형 집자리에 방형의 소형 집자리가 세트를 이루는 전형적인 취락으로서 청동기 시대의 사회상과 촌락사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 준다. 또한 탄화미가 출토된 1호는 영동 지역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집자리로 알려져 영동 지역에서 벼농사가 일찍 시작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치는 1호 집자리 3390±60 BP(보정 연대 기원전 1700~1500년), 2호 3100±50 BP(보정 연대 기원전 1500~1200년), 3호 3230±50 BP(보정 연대 기원전1620~1400년)가 제시되었다. ==조사정보== {|class="listtable" ! class="col-type"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지표조사 || 1994년~1994년 || 강릉 교동 주거지 || 2002 || 강릉대학교 박물관 |- | 시굴조사 || 1996년 11월 22일~1997년 12월 26일 || 강릉 교동 주거지 || 2002 || 강릉대학교 박물관 |}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유적정보
(
원본 보기
)
600-0232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