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주 메뉴
주 메뉴
사이드바로 이동
숨기기
둘러보기
대문
최근 바뀜
임의의 문서로
미디어위키 도움말
한국고고학사전
검색
검색
보이기
로그인
개인 도구
로그인
600-0142 문서 원본 보기
문서
토론
한국어
읽기
원본 보기
역사 보기
도구
도구
사이드바로 이동
숨기기
동작
읽기
원본 보기
역사 보기
일반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
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
특수 문서 목록
문서 정보
보이기
사이드바로 이동
숨기기
←
600-0142
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관리자
.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DISPLAYTITLE:고무래}} {{개념정보 | 한글표제어=고무래 | 시대=청동기 시대 | 관련 유적=광주 노대동유적, 광주 동림동 유적, 고창 봉산리 황산 유적, 논산 마전리 유적, 대구 매천동 유적 | 키워드=[[농기구]], [[송국리 문화]], [[농경]], [[밭]], [[논]]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김도헌 }} ==설명== 고무래는 [[밭|밭]]과 [[논|논]]의 흙을 고를 때 사용하는 [[농기구|농기구]]로 곡식을 긁어 모으거나 펴는 데에 쓰기도 한다. ‘丁’자처럼 장방형의 널빤지 조각 같은 날(刃部)에 긴 [[나무자루|나무 자루(木柄)]]를 연결한 모양이다.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 고무래는 나무로 만들었는데, 장방형의 날에 긴 자루를 연결한 모양이다. 날은 너비 25~32㎝, 높이 12~16㎝, 두께 2~5㎝ 정도이다. 날의 중앙 위쪽에는 자루를 끼우는 동그란 자루 구멍(柄孔)이 있는데, 지름 3~4㎝ 정도의 크기이다. 자루는 아직 출토되지 않았지만, 가로로 자른 면은 원형이고 길이는 1m 전후로 추정한다. 한편, 고무래 날의 위쪽 양 끝에 각각 1개씩 총 2개의 작은 구멍을 뚫은 사례가 있는데, 2개의 구멍은 고무래 날과 흙받이를 연결하는 구멍으로 알려졌다. 흙받이는 고무래 날처럼 얇은 널빤지 모양이다. 보통 논에서 작업할 때 고무래 날에 흙받이를 덧대어 사용하는데 고무래를 쓸 때 작업자에게 튀는 흙탕물 등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청동기 시대 고무래는 [[광주동림동유적|광주 동림동]], [[광주노대동유적|노대동]], [[고창봉산리황산유적|고창 황산]], [[논산마전리유적|논산 마전리]], [[대구매천동유적|대구 매천동]] 등의 유적에서 출토되었는데, 이 유적들은 벼농사가 발달한 [[송국리문화|송국리 문화]]와 관련이 있다. 따라서 고무래는 청동기 시대 송국리 문화 단계에 논농사의 확산을 알려주는 유물로 파악한다. 또한, [[농경|농경]] 작업의 내용에 따라 농기구 종류가 나누어지기 시작하였음을 반영함과 동시에 농경 기술의 발전을 알려주는 자료로 평가한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개념정보
(
원본 보기
)
600-0142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