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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가포동 유적(昌原 架浦洞遺蹟)}}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가포동 유적 | 이칭별칭=창원 가포동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가포동 445 일원 | 성격=복합유적 | 키워드=[[덧띠 토기]], [[돌보습]], [[매납 유구]], [[민무늬 토기 편]], [[청동 검]], [[청동 꺾창]], [[청동 지우개]], [[청동 투겁창]]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고민정 }} ==설명==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가포동 445 일원에 위치한다. 체육공원 조성에 앞서 1999년 조사하여, [[매납유구|매납 유구(埋納遺構)]] 2기를 확인하였다. 유적은 마산만의 입구인 율구만의 서쪽에 있는 갈마봉(해발 200m)의 동쪽 급경사면에 위치한다. 매납 유구는 높이 2m, 두께 2m의 2개의 바위로 이루어졌으며, 공사 중 서쪽 바위를 들어내고, 다른 바위 사이의 흙을 제거 하던 중 [[청동꺾창|청동 꺾창(銅戈)]]과 [[청동투겁창|청동 투겁창(銅矛)]]이 확인되었다. 이외에 [[청동검|청동 검(銅劍)]] 1점, [[청동지우개|청동 지우개(銅鉈)]] 1점, [[돌보습|돌보습(打製掘地具)]] 1점과 [[덧띠토기|덧띠 토기(粘土帶土器)]], [[민무늬토기편|민무늬 토기 편]] 등이 출토되었다. 유물의 위치와 높이는 서로 다르며, 청동 검은 서쪽 바위의 바닥과 같은 높이에서 확인되었고, 청동 투겁창은 4조각으로 분리되어 바위틈의 흙 속에서 출토되었다. 이러한 점을 통해 청동 검을 바위틈에 끼워 넣은 뒤, 청동 투겁창을 4조각으로 부러 뜨린 후 차례로 밀어 넣은 것으로 판단된다. 서쪽 바위가 있던 가장자리에서는 돌보습의 날 1점과 목탄이 확인되었다. 매납 유구의 바위는 인위적인 시설물이 아닌 자연암괴이며, 출토된 [[청동기|청동기]]는 특별한 목적으로 산사면의 바위틈 사이에 끼워 넣은 것으로 판단된다. 청동 검, 청동 투겁창, 청동 꺾창의 잘린 면의 상태를 통해 의도적으로 부러뜨려 매납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동검은 [[세형동검|세형동검]]의 몸통(身部) 편으로 날은 매납 당시에 이미 결실된 상태였고, 절단된 양끝은 매우 정연하다. 하단부의 등대 한쪽 면은 비스듬하게 잘려져 있는데, 이는 절단할 당시 일부러 홈을 낸 흔적이다. 청동 투겁창의 부러진 면도 정연하다. 꺾창은 홈이 없는 형태(無血溝式)로 동쪽 바위의 서쪽 면 아랫부분에 봉부(鋒部)가 아래쪽을 향해 세워진 상태였다. 외에도 청동 지우개로 추정되는 청동기는 공사 인부들에 의해 야산에 버려졌지만 찾지 못하였으며, 증언에 따르면 길이 15~20㎝의 끝이 뾰족한 형태로 추정된다. 유물의 출토 양상을 통해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것이 아닌, 특별한 목적을 갖고 청동기를 묻은 것으로 판단된다. 이외에 [[대구만촌동유적|대구 만촌동]], [[산청백운리유적|산청 백운리]], [[청도예전동유적|청도 예전동 유적]]에서도 확인된다는 점에서 청동기 매납에 대한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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