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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두구동 임석 유적(釜山 杜邱洞林石遺蹟)}} {{유적정보 | 이칭별칭=부산 두구동 임석 유적, 두구동 임석 돌널무덤 | 키워드=[[돌널무덤]], [[굽다리 토기]], [[간 돌창]], [[둥근 덧띠 토기 단계]] | 시대=청동기 | 위치=대한민국 | 집필연도=2019 | 집필자=김재윤 | 성격=고분 | 소재지=부산광역시 금정구 두구동 601-9 일대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설명== 부산광역시 금정구 두구동 601-9 일대에 위치한다. 부산 내 유적 현황 조사를 통해 확인하였으며, 1987년 [[돌널무덤|돌널무덤(石棺墓)]] 1기 및 [[삼국시대|삼국 시대]] 무덤을 조사하였다. 유적은 공덕산에서 서쪽으로 뻗은 구릉 말단에 입지하며, 서쪽으로 500m 떨어져 수영강이 남북으로 흐른다. 무덤은 길이 3m, 너비 1.05m로 [[묘광|무덤 구덩이(墓壙)]]를 파고, 깬돌(割石)으로 네 벽을 축조하였다. 남쪽 벽에는 깬돌이 없어 내부에는 [[나무널|나무널(木棺)]]을 설치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구덩이를 파고 나무널을 안치한 후 그 사이에 돌과 흙을 채운 것으로 추정된다. 바닥에서 35㎝ 높이에서 벽석이 1~2단 안쪽으로 약간 들어와 있는데, 나무널의 높이와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돌널은 길이 1.5m, 너비 0.6m, 깊이 0.6m이고, 바닥에는 잔자갈을 3~10㎝ 깔았다. 돌널의 동쪽 상면(上面)에 판돌(板石) 1매가 가로로 놓여 있어, 뚜껑돌(蓋石)로 추정되며, 나머지 부분에는 나무 뚜껑이 이용된 것으로 생각된다. 출토 유물은 [[굽다리토기|굽다리 토기(豆形土器)]]의 접시 부분과 [[간돌창|간 돌창(磨製石槍)]]이 확인되었다. 유적의 시기는 [[둥근덧띠토기단계|둥근 덧띠 토기(圓形粘土帶土器) 단계]]로 판단되며, 유적 주변에도 다수의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와 [[석기|석기]] 편이 채집되어 주위에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 유적이 분포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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