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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동산리 유적(慶州 東山里遺蹟)}} {{유적정보 | 이칭별칭=경주 동산리 유적 | 키워드=[[집자리]], [[둘레 도랑]], [[구덩이]], [[널무덤]], [[바리 토기]], [[항아리 모양 토기]], [[골아가리 토기]], [[반달 돌칼]], [[대롱옥]], [[붉은 간 토기]], [[대롱옥]], [[붉은 간 토기]] | 시대=청동기 | 삼국시대미상 | 통일신라 | 조선 | 위치=대한민국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신영애 | 조성 시기=기원전 10~8 세기 | 성격=복합유적 | 크기=20,165㎡(조사면적) | 소재지=경상북도 경주시 천북면 동산리 913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설명== 경상북도 경주시 천북면 동산리 913에 위치한다. 아파트 신축에 앞서 2007년 조사하여, [[집자리|집자리]] 42기, [[주구|둘레 도랑(周溝)]] 4기, [[구덩이|구덩이]] 2기, [[널무덤|널무덤(木棺墓)]] 1기 및 [[삼국시대|삼국]]~[[조선시대|조선 시대]]의 다양한 유구가 확인되었다. 유적은 동쪽의 야산에서 낮게 이어지는 얕은 구릉 위에 입지한다. 유적의 북서쪽으로는 비봉산(해발 145m), 남서쪽·북쪽으로는 야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남쪽은 넓은 평야로, 앞천이 서쪽으로 흘러 형산강 지류와 합류한다. 유적에서 남동쪽으로 600m 떨어져 [[경주동산리고인돌|동산리 고인돌]]이 있다. 집자리는 구릉 정상부와 남사면에 분포하며, 중복 현상이 많아 밀집도가 높다. 방형 20기, 장방형 11기, 세장방형 1기로, 24㎡ 미만의 소형 19기, 24~44㎡의 중형 9기, 44㎡ 이상 대형 4기로 구분된다. 6호는 세장방형으로, 길이 14.28m, 너비 4.42m, 깊이 0.2m로 가장 크며, 구릉 정상부에 배치되어 유적의 중심 집자리로 판단된다. 바닥은 맨땅을 다진 후 그대로 이용하는 것이 대부분이며, 대형 집자리 2기는 불 다짐 처리하였다. 내부 시설은 [[화덕자리|화덕 자리]], [[기둥구멍|기둥 구멍]], [[벽도랑|벽 도랑(壁溝)]], [[저장구덩이|저장 구덩이]] 등이 있다. 화덕 자리는 1개씩 확인되는데 원형 또는 타원형의 [[무시설식화덕자리|무시설식]]으로 중앙 또는 짧은 벽 쪽으로 약간 치우쳐 위치한다. 기둥 구멍은 2열의 4·6·8주식(柱式)을 중심으로 3열의 9·12·15주식과 4열의 16주식이 확인된다. 벽 도랑은 25기에서 확인되고 2기는 벽 도랑 내부에 기둥 구멍이 있다. 저장 구덩이는 2기에서 확인되고 벽 모서리에 평면 원형으로 설치되었으며, 지름 0.46~0.62㎝, 깊이 0.07m이다. 외부 시설은 [[외부돌출구|외부 돌출구(外部突出溝)]]와 둘레 도랑이 있다. 외부 돌출구는 15기에서 확인되며, 특별한 시설을 하지 않은 구덩식이다. 26호 벽 도랑과 외부 돌출구는 내부에 길이 20㎝의 [[깬돌|깬돌(割石)]]을 세우고 그 위에 깬돌을 덮어 [[암거|암거(暗渠)]] 형태로 만들었다. 둘레 도랑은 말각 장방형으로 집자리를 감싸며, 15호 집자리의 둘레 도랑은 길이 12.3m, 너비 10.98m이다. 구덩이 28호는 타원형으로 단면은 ‘V’자 모양이고, 길이 2.04m, 너비 1.28m, 깊이 0.8m이다. 단면 형태와 깊이, 바닥에 기둥 구멍이 확인되어 함정 유구일 가능성이 있다. 출토 유물은 [[바리모양토기|바리 토기(鉢形土器)]], [[항아리모양토기|항아리 모양 토기(壺形土器)]], [[굽 달린 작은 항아리|굽 달린 작은 항아리(臺附小壺)]], [[겹아가리짧은빗금구멍무늬토기|겹아가리 짧은 빗금 구멍무늬 토기(二重口緣短斜線孔列土器)]], [[겹아가리짧은빗금무늬토기|겹아가리 짧은 빗금무늬 토기(二重口緣短斜線文土器)]], [[골아가리구멍무늬토기|골아가리 구멍무늬 토기(口脣刻目孔列土器)]], [[짧은빗금무늬토기|짧은 빗금무늬 토기(短斜線文土器)]], [[구멍무늬토기|구멍무늬 토기(孔列土器)]], [[골아가리토기|골아가리 토기(口脣刻目土器)]], [[가로줄무늬토기|가로줄무늬 토기(橫線文土器)]], [[간돌검|간 돌검]], [[슴베돌살촉|슴베 돌살촉(有莖式石鏃)]], [[반달돌칼|반달 돌칼]], [[돌도끼|돌도끼(石斧)]], [[숫돌|숫돌(砥石)]], [[가락바퀴|가락바퀴]] 등이 출토되었다. 널무덤은 집자리와 떨어진 서쪽 사면에 위치한다. 경사가 낮은 남쪽 짧은 벽이 유실되었지만 장방형으로 추정되고, 장축 방향은 등고선과 직교하는 동서향이다. 길이 1.85m, 너비 1.06m, 깊이 0.17m이며, 널의 너비는 0.5m로 추정된다. 유물은 바닥 중앙에서 [[대롱옥|대롱옥(管玉)]], 긴 벽 아래에서 토제 [[방추차|방추차]]와 [[붉은간토기|붉은 간 토기]]가 출토되었다. 유적은 형산강과 그 지류를 따라 분포하는 선사 시대 유적의 연장선상에 있고 집자리와 무덤이 동일한 범위 내에 축조된 마을 유적이다. 유적의 연대는 집자리에서 확인된 목탄의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을 통해 7호 2600±50 BP(보정 연대 기원전 790년), 33호 2790±60 BP(보정 연대 기원전 950년)로 확인되었다. 즉, 집자리의 중심 연대는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 이른 시기로 판단된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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