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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뒤꽂이[髮飾]}} {{개념정보 | 한글표제어=뒤꽂이 | 이칭별칭=비녀, 발식, 잠, 채 | 시대=신석기 시대 | 관련 지역=한반도 남부 지역 | 관련 유적=완도 여서도 조개더미, 창녕 비봉리 조개더미, 통영 연대도 조개더미, 부산 범방 조개무지 | 키워드=[[신석기 시대 장신구]], [[귀걸이]], [[드리개]], [[조개 팔찌]]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신석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24 | 집필자=지영배 }} ==설명== [[신석기시대|신석기 시대]] [[뒤꽂이|뒤꽂이]]는 주로 사슴의 어깨뼈[肩胛骨]와 손허리뼈[中手骨]를 가늘고 길게 쪼개고 장식하여 [[비녀|비녀]]와 같은 용도로 사용한 [[장신구|장신구]]이다. 뒤꽂이는 두 가지 형태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그 폭이 좁고 가늘면서 단면이 원형 혹은 타원형의 침과 같은 모양인 것, 다른 하나는 상대적으로 폭이 넓으면서 단면은 납작한 형태인 것이다. 한반도에서 출토된 뒤꽂이는 폭이 넓고 단면이 납작한 형태로 뒤꽂이의 머리 쪽에 한 개 혹은 두 개의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이 많다. 뒤꽂이에 관한 연구는 전체 신석기 시대 장신구에 대해 논하면서 출토 현황과 특징이 언급되는 정도이다. 뒤꽂이는 신석기 시대 전 시기에 거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며, 한반도 남해안 전역과 동해안의 유적에서 주로 출토된다. 뒤꽂이는 신석기 시대 [[귀걸이|귀걸이]]와 [[드리개|드리개]], [[조개팔찌|조개 팔찌]]와 같이 신체 장식만을 위해 사용된 것이 아니라, 머리를 고정하는 실용적 기능을 하며 장식성이 가미되었다는 점에서 다른 장신구와 차이를 보인다. [[완도여서도패총|완도 여서도 조개더미]] 출토 뒤꽂이는 몸체에 기하학적 [[점열무늬|점열무늬]]가 장식된 것이 특징이다. 또한 뒤꽂이 가운데 납작하고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은 출토 상태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 일반 뼈뿔연장과 구분하기 어렵다. 한편, [[부산범방유적|부산 범방 유적]] 무덤에서 출토된 것은 [[인골|인골]]의 머리 부분에서 확인되어 명확한 뒤꽂이로 판단된다. ==이미지== <gallery mode=packed> File:부산_동삼동_조개더미_출토_뒤꽂이.jpg </gallery> ==참고문헌== * 복천박물관. (2011). <i>인간, 바다, 그리고 삶: 선사·고대의 패총</i>. https://www.riss.kr/link?id=M12692841 * 지영배. (2013). <i>한반도 신석기시대 장신구 및 이형유물에 대한 연구</i>. (석사 학위 논문). 부산대학교. https://www.riss.kr/link?id=T13087628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신석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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