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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뗀 돌도끼[打製石斧]}} {{개념정보 | 한글표제어=뗀 돌도끼[打製石斧] | 이칭별칭=타제석부 | 시대=신석기 시대 | 관련 유적=부산 가덕도 장항 유적, 부산 동삼동 조개더미, 통영 상노대도 유적, 합천 봉계리 유적, 창녕 비봉리유적, 하남 미사리 유적, 단양 수양개 유적, 울주 신암리 유적, 서울 암사동 유적, 양양 오산리 유적, 청도 오진리 바위그늘 유적, 진안 운암 유적, 곡성 유정리 유평 유적, 함평 장년리 당하산 유적, 보성 죽산리 유적, 경주 황성동 유적 | 키워드=[[신석기 시대 석기]], [[굴지구]], [[생업]]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신석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24 | 집필자=윤정국 }} ==설명== [[뗀돌도끼|뗀 돌도끼]]는 돌을 쪼개거나 깨뜨려 만들어서 겉면에 [[격지흔|격지흔[薄片痕]]]이 남아 있는 도끼 모양의 [[석기|석기]]이다. 1960년대에 처음 소개되었고, 1980년대부터 형태 분석이 이루어졌으며, 1990년에는 형태와 함께 기능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2000년대에는 뗀 돌도끼를 뗀 돌도끼와 [[굴지구|굴지구]]로 구분하고, 굴지구만을 별도로 연구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최근에는 둘을 통합적으로 연구하기도 하고, 각각의 형태, 사용 방식, 사용 흔적 등을 연구하기도 한다. 신석기 시대 뗀 돌도끼가 출토된 유적은 [[인천백령도유적|인천 백령도 진촌리 유적]], [[강화도별망조개무지|강화도 별망 유적]], [[서울암사동유적|서울 암사동 유적]], [[하남미사리유적|하남 미사리 유적]], [[단양수양개유적|단양 수양개 유적]], [[양양오산리유적|양양 오산리 유적]], [[함평장년리당하산유적|함평 장년리 당하산 유적]], [[진안운암유적|진안 운암 유적]], [[남원대곡리유적|남원 대곡리 유적]], [[보성죽산리유적|보성 죽산리 유적]], [[곡성유정리유평유적|곡성 유정리 유평 유적]], [[합천봉계리유적|합천 봉계리 유적]], [[청도오진리바위그늘유적|청도 오진리 바위 그늘 유적]], [[창녕비봉리유적|창녕 비봉리 유적]], [[경주황성동유적|경주 황성동 유적]], [[여수경도유적|여수 경도 유적]], [[통영상노대도유적|통영 상노대도 유적]], [[부산동삼동조도조개더미|부산 동삼동 조개더미]], [[울주신암리유적|울주 신암리 유적]] 등이 있다. 이들 유적에서 출토된 뗀 돌도끼는 전면에 갈은 흔적이 없으며, 격지가 떼어진 형태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 특징이다. 시기적으로 [[신석기시대초기|신석기 시대 초기]]의 것부터 [[신석기시대후기|후기]]의 것까지 출토되고 있다. 이때 뗀 돌도끼는 굴지구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뗀 돌도끼에 대한 그간의 연구는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나뉜다. 하나는 굴지구가 뗀 돌도끼에 포함된다고 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굴지구와 뗀 돌도끼를 별도로 분류한 것이다. 전자는 형태와 크기, 날 모양 등을 기준으로 하여 타격 흔적이 있는 모든 석기를 같은 분류군에 포함시키며, 후자는 형태와 기능 차이를 바탕으로 굴지구와 뗀 돌도끼를 별도의 도구로 구분한다. 이에 따라 도출되는 연구 결과 또한 상이하기 때문에, 향후 뗀 돌도끼에 대한 보다 면밀한 분류와 기능 해석이 필요하다. 뗀 돌도끼의 재료는 유적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점판암, 셰일, 혼펠스 등의 퇴적변성암계 돌감이다. 돌감의 켜면[片理]과 자연면을 적절히 활용해 몸체를 형성한 후, 중앙부를 수직으로 내리치거나 사선으로 떼어내어 제작하였다. 뗀 돌도끼의 분류 기준에 대해서는 의견 차이가 존재하지만, 대체로 크기, 평면과 날[刃部] 형태, 제작 기법에 따라 세분한다. 뗀 돌도끼는 [[생업|생업]] 경제, 기술 발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앞으로 석기의 분류, 사용 방법, 기능 분석 등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이미지== <gallery mode=packed> File:부산_가덕도_장항_유적_출토_뗀_돌도끼.jpg </gallery> ==참고문헌== * 박성근. (2012). <i>남부지역 신석기시대 석부 연구</i>. (석사 학위 논문). 부산대학교. https://www.riss.kr/link?id=T12896774 * 윤정국. (2009). 신석기시대 굴지구의 제작기법에 대한 연구. <i>한국신석기연구, 17</i>, 29-61. https://www.riss.kr/link?id=A102089407 * 윤정국. (2020). 신석기시대 굴지구의 변천과 의미. <i>호남고고학보, 65</i>, 4-37. https://www.riss.kr/link?id=A106930695 * 윤지연. (2006). <i>한반도 중서부지역 석부에 대한 일고찰: 신석기~청동기 전기 석부의 기능과 변화상을 중심으로</i>. (석사 학위 논문). 서울대학교. https://www.riss.kr/link?id=T13807698 * 한국문물연구원. (2014). <i>부산 가덕도 장항유적</i>. https://www.riss.kr/link?id=M14078591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신석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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