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주 메뉴
주 메뉴
사이드바로 이동
숨기기
둘러보기
대문
최근 바뀜
임의의 문서로
미디어위키 도움말
한국고고학사전
검색
검색
보이기
로그인
개인 도구
로그인
800-0053 문서 원본 보기
문서
토론
한국어
읽기
원본 보기
역사 보기
도구
도구
사이드바로 이동
숨기기
동작
읽기
원본 보기
역사 보기
일반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
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
특수 문서 목록
문서 정보
보이기
사이드바로 이동
숨기기
←
800-0053
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관리자
.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DISPLAYTITLE:신석기 시대 독무덤[新石器時代甕棺墓]}} {{개념정보 | 한글표제어=신석기 시대 독무덤[新石器時代甕棺墓] | 이칭별칭=옹관묘 | 시대=신석기 시대 | 관련 유적=부산 동삼동 조개더미, 진주 상촌리 유적, 울산 산하동 화암 유적 | 키워드=[[신석기 시대 무덤]], [[움무덤]], [[깊은 바리 토기]], [[항아리 모양 토기]], [[두벌묻기]]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신석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24 | 집필자=황철주 }} ==설명== [[독무덤|독무덤]]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던 [[깊은바리모양토기|깊은 바리 토기[深鉢形土器]]]나 [[항아리모양토기|항아리 모양 토기]] 등에 사망 직후의 주검 또는 [[두벌묻기|두벌묻기]]로 추려진 뼈를 매장하는 무덤 형식이다. 현재까지 [[울산산하동유적|울산 산하동 유적]]에서 1기, [[부산동삼동조도조개더미|부산 동삼동 조개더미]]에서 1기, [[부산가덕도장항유적|부산 가덕도 장항 유적]]에서 1기, [[진주상촌리유적|진주 상촌리 유적]]에서 4기 등 총 7기가 발견되었다. 이 중 부산 가덕도 장항 유적의 독무덤은 사람 뼈가 검출되지 않아서 부장용 또는 매장 의례용일 가능성도 있다. [[신석기시대|신석기 시대]] 조기(기원전 5,000년 전후)에 해당하는 부산 동삼동 조개더미 독무덤은 길이 65cm, 너비 50cm, 잔존 깊이 20cm 가량의 [[구덩이|구덩이]] 안에 고리 모양 손잡이[環形把手] 6개가 달린 항아리 모양 토기를 눕혀서 매장한 구조이다. 신석기 시대 전기 말~중기 초(기원전 3,500년 전후)에 해당하는 울산 산하동 유적 독무덤은 유일한 이음식[合口式] 독무덤이다. 길이 130cm, 너비 74cm, 깊이 11cm가량의 타원형 구덩이 안에 둥근 바닥의 깊은 바리 토기 2개를 맞붙여 매장한 구조이다. 이 무덤들은 2차장으로 [[화장|화장]]된 유골을 안치한 것인지, 유아용인지는 불분명하다. 신석기 시대 중기(기원전 3000년 전후)에 해당하는 진주 상촌리 유적 독무덤은 4기 중 3기가 [[화장무덤|화장 무덤]]으로 알려져 있으며, 모두 [[집자리|집자리]] 내부와 벽 쪽에서 조사되었다. 일상생활용으로 사용된 깊은 바리 토기의 바닥에 구멍을 뚫은 후 수직으로 세운 상태로 화장된 유골을 안치하였으며, 그 위를 다른 토기 조각으로 덮은 구조이다. 진주 상촌리 유적의 독무덤은 적어도 신석기 시대 중기 무렵부터 2차장으로서의 화장 [[장법|장법]]이 존재하였음을 알려 주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또한 부산 동삼동 조개더미와 울산 산하동 유적의 독무덤은 시기별·지역별 제작 방식과 구조가 다르다는 점을 나타내고 있으므로 앞으로 [[신석기시대무덤|신석기 시대 무덤]] 연구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이미지== <gallery mode=packed> File:부산_동삼동_조개더미_독무덤.jpg </gallery> ==참고문헌== * 하인수. (2021). 신석기시대 분묘와 부장품. 복천박물관(편저), <i>제14기 고고학 시민강좌 자료집</i>.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신석기 시대 편)]]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개념정보
(
원본 보기
)
800-0053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