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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한반도 중서부 지역의 신석기 토기(韓半島中西部地域의 新石器土器)}} ==설명== 한반도 중서부 지역은 대동강 유역과 한강 유역을 비롯하여 그 근방의 해안 지대를 포괄하는 지역이다. 이 지역은 우리나라 [[신석기시대|신석기 시대]] 토기를 대표하는 [[뾰족바닥토기|뾰족 바닥[尖底]]] [[빗살무늬토기|빗살무늬 토기]] 전통의 출발지이기도 하다. 중서부 지역의 토기 문화는 신석기 시대 중기에 중동부 지역과 남부 지역으로 빠르게 확산되었으며, 이후 범위가 점차 확대되면서 남한 전 지역은 공통적인 문화 요소를 공유하게 되었다. 중서부 지역의 토기는 ‘구분계’와 ‘동일계’의 두 가지 형식으로 구분된다. 구분계 토기는 아가리, 몸통, 바닥에 각기 다른 무늬를 시문하며, [[암사동식토기|암사동식 토기]]라고도 한다. 동일계 토기는 토기 전체에 동일하거나 반복적인 무늬를 장식하며, [[금탄리식토기|금탄리식 토기]]와 [[시도식토기|시도식 토기]], [[금강식토기|금강식 토기]]가 있다. 암사동식 토기는 대체로 신석기 시대 전기에서 중기, 금탄리식과 시도식 토기는 중기에서 후기, 금강식 토기는 후기 이후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구분계와 동일계 모두 시문 범위가 축소되며, 무늬가 간략해지고 정연성도 약화된다. 대부분이 뾰족 바닥 토기이며 편평한 바닥 토기의 비율은 매우 낮다. 암사동식 토기는 [[온천궁산유적|온천 궁산 유적]], [[봉산지탑리유적|봉산 지탑리 유적]], [[서울암사동유적|서울 암사동 유적]], [[하남미사리유적|하남 미사리 유적]] 등에서 출토되는 빗살무늬 토기를 지표로 한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토기 전체를 아가리, 몸통, 바닥으로 구분하여 각기 다른 무늬를 장식한다. 토기의 바탕흙[胎土]은 지역마다 다른데, 대동강 유역에서는 활석, 한강 유역에서는 운모, 서해안과 도서 지역에서는 석립(石粒)을 주로 점토와 섞는다. 암사동식 토기는 무늬의 범위와 무늬를 새기는 방법에 따라 다시 3형식으로 세분된다. 먼저 암사동 Ⅰ식 토기는 토기 겉면을 3부위로 나누고 각기 다른 무늬를 장식하는 것이 특징이다. 아가리 주변에는 도장을 찍듯이 무늬를 새기는 [[눌러찍기|눌러찍기[押捺]]]·[[찌르기|찌르기[刺突]]] 기법으로 [[점열무늬|점열무늬]], [[짧은빗금무늬|짧은 빗금무늬]], [[손톱무늬|손톱무늬]]를 새긴다. 몸통에는 뾰족한 도구로 선을 그어 무늬를 만드는 [[새기기|새기기[沈線]]] 기법으로 [[생선뼈무늬|생선뼈무늬]]를 시문하였으며, 바닥에는 [[빗금무늬|빗금무늬[斜線文]]]가 바큇살처럼 새겨진 방사상무늬를 새겼다. 암사동 Ⅱ식 토기는 아가리와 몸통 사이에 찌르기 기법으로 [[타래무늬|타래무늬]], [[물결무늬|물결무늬]], [[반겹고리무늬|반겹고리무늬]]를 시문하고 새기기 기법으로 생선뼈무늬, [[격자무늬|격자무늬]] 등의 종속 무늬를 추가하기도 한다. 이 외에도 토기 바닥에는 무늬를 생략하고 아가리에는 짧은 빗금무늬, 몸통에는 [[가로생선뼈무늬|가로 생선뼈무늬]]를 얕게 장식한 토기 역시 암사동 Ⅱ식 토기에 포함된다. 암사동 Ⅲ식 토기는 무늬를 더 생략하여 짧은 빗금무늬를 아가리에 한정하여 장식한 토기를 의미한다. 주로 서해안의 [[조개더미|조개더미]] 유적에서 동일계 토기와 공존하는 양상을 보인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암사동 Ⅰ식 토기에서 종속 무늬가 추가되는 암사동 Ⅱ식 토기로 변화하고, 이후 암사동 Ⅲ식 토기로 변화한다. 금탄리식 토기는 [[평양금탄리유적|평양 금탄리 유적]] 출토 토기를 대표로 하며, 문화층에 따라 2형식으로 세분된다. 먼저 금탄리 Ⅰ식 토기는 [[삼각집선문|삼각집선무늬]]나 가로 생선뼈무늬와 같은 무늬 2∼3종을 아가리에서 바닥까지 교대로 배치하되, 무늬와 무늬 사이에 [[가로줄무늬|가로 줄무늬[多齒橫線文]]]를 여러 줄 넣어 문양대(文樣帶)를 구분하는 것이 특징이다. 직선적인 포탄 형태에서 벗어나 배가 부르고 안쪽으로 오므라지는 형태[內彎]도 등장하는데, 바탕흙에는 활석이 포함되어 있다. 대동강과 황해도 지역을 중심으로 분포하지만, 한강 유역, 서해안 일대, 강원 영동 지역 등에서도 소량 확인된다. 지금은 중기(전반)에 해당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지만, 토기의 등장 시기와 존속 시기 등에 이견이 있어 앞으로도 연구가 필요하다. 금탄리 Ⅱ식 토기는 금탄리 Ⅰ식 토기와는 달리 단일한 무늬로 토기 전면을 장식하며, 바닥에는 무늬를 새기지 않기도 한다. 대형 토기에는 주로 가로 생선뼈무늬가 장식된다. 배가 부르면서 안쪽으로 오므라드는 형태이며 둥근 바닥이 많아진다. 바탕흙에는 활석이 아니라 모래 빚음을 추가하였다. 금탄리 Ⅱ식 토기가 유행하면서 짧은 빗금무늬나 줄무늬를 연이어 문양대를 구성하고 이를 일정 간격으로 배치한 띠대문 토기도 유행한다. 또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의 비율이 증가하며, 민무늬 토기가 중소형 토기의 대다수를 차지하게 된다. 금탄리 Ⅰ식 토기보다 금탄리 Ⅱ식 토기가 더 늦은 시기의 것임은 분명하지만, 이질감이 있어 두 양식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고 보기는 어렵고 형성 과정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시도식 토기는 [[인천시도조개더미|인천 시도 조개더미]]에서 출토된 토기를 표지로 하며, 주로 서해안 일대에서 확인되는 동일계 토기이다. 아가리에서부터 몸통까지 가로 생선뼈무늬, 격자무늬, [[빗금띠무늬|빗금띠무늬]] 계통의 무늬를 장식한다. 바닥이나 몸통 아래쪽에는 무늬가 생략된 사례가 많고, 가로 생선뼈무늬 또한 얕게 그어 장식한 것이 많다. 서해안식 토기라고도 한다. 금강식 토기는 [[청원쌍청리유적|청원(현재의 청주시) 쌍청리 유적]] 출토 토기를 지표로 한다. 바닥이 둥글고 짧게 직립하거나 아가리가 밖으로 벌어지는 모양[外反口緣]으로, 무늬는 아가리에서부터 몸통의 최대 너비까지만 새겨진다. 끝이 넓고 미세한 요철이 있는 [[무늬새기개|무늬 새기개[施文具]]]를 연이어 눌러 특징적이고 전형적인 마름모무늬를 표현한다. 낙동강 수계, 서해안 일대와 동해안에서도 확인되지만, 처음에는 금강 수계에서 주로 발견되었기 때문에 금강식 토기로 명명하였다. 분포 범위를 고려하여 쌍청리식 토기라고 부르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의견이나 [[마름모무늬|마름모무늬]] 토기를 포괄적으로 정의하고 여기에 금강식 토기를 포함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되었지만, 금강 수계를 중심으로 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으로 금강식 토기로 부른다. 금강식 토기의 기원이나 계보에 대해서도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고 있는데, 마름모무늬는 남부 내륙 지역과의 교류에 영향을 받은 결과로 추정된다. 북한에서는 1950년 온천 궁산 유적에서 발굴 조사가 처음으로 이루어진 후, 이 지역의 신석기 시대 문화를 ‘[[궁산문화|궁산 문화]]’라고 명명하였다. 이후 봉산 지탑리 유적, 평양 금탄리 유적, [[평양호남리남경유적|남경 유적]]에서의 조사 성과를 반영하여 총 5기의 편년 체제를 완성하였다. 아직 북한 자료와 편년에 대한 의문이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았으며, 연구자에 따라 편년에는 세부적 차이도 있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에 따른 중서부 지역 토기의 변화 양상에 대해서는 남북 연구자가 대체로 일치하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남한에서는 일반적으로 토기 무늬의 종류와 배치가 변화한 양상에 주목하여 유적 간 교차 편년을 실시하고 방사성 탄소 연대를 고려하며 중서부 지역 신석기 시대 편년을 연구하고 있다. ==이미지== <gallery mode=packed> File:군산_가도_조개더미_출토_금강식_토기.jpg File:군산_가도_조개더미_출토_암사동_III식_토기.jpg File:서울_암사동_유적_출토_암사동II식_토기1.jpg File:서울_암사동_유적_출토_암사동II식_토기2.jpg File:서울_암사동_유적_출토_암사동II식_토기3.jpg File:서울_암사동_유적_출토_암사동I식_토기.jpg File:인천_모이도_조개더미_출토_시도식_토기.jpg File:인천_소연평도_조개더미_출토_금강식_토기.jpg File:평양_금탄리_유적_출토_금탄리_II식_토기.jpg File:평양_금탄리_유적_출토_금탄리_I식_토기.jpg </gallery> ==참고문헌== * 소상영. (2023). 신석기시대의 문화. 한국고고학회(편저), <i>한국고고학 이해</i>(pp.37-62). 진인진. https://www.riss.kr/link?id=M16856056 * 안승모. (2002). 금탄리Ⅰ식토기의 재검토. <i>한국신석기연구, 4</i>, 27-43. https://www.riss.kr/link?id=A102089434 * 임상택. (2008). <i>한반도 중서부지역 빗살무늬토기문화 변동과정 연구</i>. 일지사. https://www.riss.kr/link?id=M11304626 * 중앙문화재연구원. (2014). <i>한국 신석기시대 토기와 편년</i>. 진인진. https://www.riss.kr/link?id=M13617960 * 홍은경. (2024). <i>한반도 신석기시대 중서부지역의 전·중기 편년과 지역 집단의 네트워크: 토기 문양을 중심으로</i>. (박사 학위 논문). 경희대학교. https://www.riss.kr/link?id=T17087598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신석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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