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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대평리 유적(谷城 大坪里遺蹟)}} {{유적정보 | 이칭별칭=곡성 대평리유적 | 키워드=[[취락]], [[송국리식 집자리]], [[도랑 무덤]], [[바리 토기]], [[간 돌살촉]], [[구멍무늬 토기]], [[굽다리 토기]] | 시대=청동기 | 위치=대한민국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천선행 | 성격=취락유적 | 소재지=전라남도 곡성군 곡성읍 대평리 656-3 일원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설명== 전라남도 곡성군 곡성읍 대평리 656-3 일원에 위치한다. 곡성-고달간 안전한 보행 환경 조성 사업에 앞서 2011년에 발굴 조사되었다. 유적 동쪽에는 북쪽에서 흐르는 섬진강과 남원시를 관통하는 요천이 합류하여 남쪽으로 흐르고, 다시 곡성천(묘천천)이 섬진강과 합류한다. 섬진강 및 지류가 형성한 넓은 충적지가 펼쳐져 있고, 유적은 바로 충적지인 대평평야 중앙부의 자연 제방에 입지한다. 유적에서는 청동기 시대 [[집자리|집자리]]를 비롯하여 초기 철기 시대 집자리, 원삼국 시대 [[구덩이|구덩이]], [[도랑|도랑(溝)]], [[소성유구|소성 유구(燒成遺構)]], [[토기가마|토기 가마]], [[환호|환호(環濠)]], [[무덤|무덤]], [[기둥건물터|기둥 건물터]], [[목책기둥구멍열|목책 기둥 구멍 열(木柵柱孔列)]] 등이 확인되었다. 구덩이와 도랑, 무덤은 정확한 기능과 시기를 알 수 없지만 일부는 청동기 시대와 초기 철기 시대에 해당한다. 청동기 시대 집자리는 29기로, 모두 방형 내지 장방형이다. 내부에 불탄 흙 흔적이 있는 화덕 자리만 확인된 8기(11·14·15·17·20·27·28·29호)를 제외하고, 모두 중앙에 타원형 구덩이가 있는 송국리식 집자리다. 집자리 규모는 길이 2.3~7.42m로 다양한데, 면적은 5~20㎡, 21~35㎡, 36~40㎡로 나뉘고 대부분 20㎡이하이다. 인접하는 [[곡성오지리유적|곡성 오지리 유적]]은 [[송국리식집자리|송국리식 집자리]]가 대부분 15㎡ 전후인 점과 대조적이다. 타원형 구덩이와 중심 기둥 구멍의 배치 양상은 3종류가 있다. 첫째는 타원형 구덩이 내부에 중심 기둥 구멍이 설치된 것(3·4·16·19호), 둘째는 타원형 구덩이 외부에 중심 기둥 구멍이 설치된 것(6~8·10·12·13·21·23·24호), 셋째는 중심 기둥 구멍 없이 타원형 구덩이만 있는 것(1·2·22·26호)이다. 이 가운데 둘째 유형이 전라남도 동부 내륙 지역에서 압도적으로 많고, [[대곡리유적|순천 대곡리]], [[가곡동유적|순천 가곡동]], [[구례봉북리유적|구례 봉북리]], [[오지리유적|곡성 오리지]] 등에서 확인된다. 반면, 대평리 유적에서는 둘째 유형과 더불어 첫째 유형이 함께 확인되는 점이 특이하다. 한편 타원형 구덩이의 기능을 유추할 수 있는 흔적이 확인되었다. 타원형 구덩이 내부에서 미완성 석기와 석재 [[격지|격지]]가 다수 확인되거나, 내부에 침수에 의한 회색 점토가 퇴적되어 있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석기 제작소 또는 집수(集水)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타원형 구덩이는 아니지만 집자리 내부의 구덩이 및 소형의 타원형 구덩이가 설치된 1·14·15·17·20·27~29호에서 적갈색 소결토가 확인되는 점으로 보아 [[노지|화덕 자리]]로 사용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밖에 바닥에 점토를 다지고 사용한 흔적, 점토 다진 후 바닥에 초목을 깔았던 흔적(16호)이 확인되었다. 11·27호 집자리에서는 화재로 페기된 양상도 확인된다. 내부에서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 편을 비롯하여, [[바리모양토기|바리 토기(鉢形土器)]], [[가락바퀴|가락바퀴]], [[간돌살촉|간 돌살촉]], 토제 [[대롱옥|대롱옥(管玉)]], [[붉은간토기|붉은 간 토기]], [[구멍무늬토기|구멍무늬 토기(孔列土器]]), [[그물추|그물추]], [[숫돌|숫돌(砥石)]] 등이 출토되었다. [[방사성탄소연대특정법|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은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한 연대를 알 수 없으나 집자리 구조와 형태, 출토 유물로 보아 [[송국리문화|송국리 문화]]가 확산되는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집자리는 8·9호, 10·11·12호, 15·16호, 17·18호가 중복되었다. 그 가운데 화덕 자리가 있는 15호와 17호를 파괴하고 타원형 구덩이가 있는 16호와 18호가 설치되는 점으로 보아 송국리식 집자리가 후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초기 철기 시대 집자리는 2기로 전라남도 지역에서는 [[군곡리패총|해남 군곡리 패총]], [[보성조성리월평유적|보성 조성리 월평 유적]]에서 확인된바 있다. 집자리는 원형과 장타원형으로 긴 지름은 각각 3.65m와 4.09m이고, 면적은 10.4㎡, 11.6㎡이다. 내부에 화덕 자리가 있고, [[덧띠토기|덧띠 토기(粘土帶土器)]]와 [[쇠뿔존잡이|쇠뿔 손잡이(牛角形把手)]] 편, [[두형토기|굽다리 토기(豆形土器)]], 민무늬 토기 편이 출토되었다. [[도랑|도랑]]은 20기가 확인되었는데, ‘ㅡ’자 모양, ‘ㄱ’자 모양 등으로 조사 범위가 좁아 전체적인 형태와 기능을 파악하기 어렵다. 내부에서 민무늬 토기 편, 석기 등이 출토되어 청동기 시대로 추정된다. 환호는 1기 확인되었는데 남서쪽에 치우쳐 있다. 잔존 길이 17.04m, 너비 0.94~1.94m, 깊이 0.2~1.02m이다. 일부만 조사되어 전체 형태를 알 수 없다. 민무늬 토기 편만 출토되어 청동기 시대 것으로 판단된다. 유사한 사례는 [[덕암동유적|순천 덕암동]], [[월산리유적|함평 월산리 유적]]에서 확인된바 있다. 구덩이는 60여 기가 확인되었는데, 평면 형태는 원형, 타원형, 장타원형, 부정형 등 다양하다. 대부분 집자리가 밀집해 있는 곳에 집중하며 청동기 시대 4기(38·40·54·58호), 원삼국 시대 4기(39·56·59·60호)를 제외하고 모두 초기 철기 시대에 해당한다. 내부에서 덧띠 토기, 쇠뿔 손잡이 편 등이 출토되는데, 기원전 1세기 전반~기원후 1세기 후반으로 판단된다. [[소성유구|소성 유구]]는 원형 내지 타원형이고, 내부에 [[목탄|목탄]]과 [[소토|불탄 흙]]이 퇴적되어 있으며 민무늬 토기 편이 출토되는 점으로 보아 청동기 시대 [[야외노지|야외 화덕(野外爐址)]]으로 추정된다. 무덤은 43기 확인되었다. [[주구|둘레 도랑(周溝)]]만 확인된 도랑무덤(周溝土壙墓) 14기, 매장 시설이 확인된 [[주구묘|도랑무덤]] 14기, [[토광묘|움무덤]]만 확인된 15기가 있다. 도랑무덤은 집자리와 분리되어 북동쪽에 분포하고, 움무덤은 집자리 주변에서 확인된다. 10호 움무덤은 청동기 시대로 판단되는데, 길이 1.85m, 너비 0.52~0.88m, 깊이 0.3m이고 붉은 간 토기가 출토되었다. 그 외에 11·17·24호는 초기 철기 시대 움무덤으로 내부에서 덧띠 토기, [[삼각돌칼|삼각 돌칼]], 굽다리 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대평리 유적은 섬진강이 형성한 넓은 충적지에 위치하여 송국리 문화 단계에 해당하는 집자리 29기가 밀도 높게 분포하고, 이를 둘러싸는 환호도 확인되었다. 인접하는 곡성 오지리 유적과 더불어 섬진강 유역을 대표하는 송국리 문화 단계의 대규모 취락 유적으로 평가된다. 송국리식 집자리는 호남 동부 지역에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방형 집자리에 타원형 구덩이 외부에 중심 기둥 구멍이 설치된 집자리와 타원형 구덩이 내부에 중심 기둥 구멍이 설치된 집자리가 함께 확인된다. 따라서 섬진강 유역 송국리 문화 유입 과정을 검토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유적이다. 이곳에 뿌리내린 청동기 시대 취락은 이후 초기 철기 시대, 원삼국 시대로 이어지며 생활 유적에서 무덤 유적으로 토지 이용 방식이 변하는 양상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 유적이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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