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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의례 활동(儀禮活動)}} ==설명== 의례 활동은 생계와 같은 일상의 활동과는 다른 특별한 일련의 행위이다. 생계 대부분을 자연에 의존했던 [[신석기시대|신석기 시대]] 사람들은 변화무쌍한 자연 앞에서 경외와 두려움을 동시에 느꼈을 것이다. 이런 감정 속에서 자연은 숭배의 대상이 되었으며, 자연을 대상으로 다양한 의례 행위가 이루어졌다. 물질 자료를 다루는 [[고고학|고고학]]의 특성상 신석기인의 신앙이나 정신세계의 복원은 어려운 일이다. 다만 신석기인의 의례 활동 산물인 무덤과 제의 유적, 상징적 유물을 근거로 당시의 의례 활동을 추정할 수 있다. 죽은 이의 시신을 처리하는 과정으로서 무덤을 만드는 것 자체가 신석기 시대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의례 활동이자 신앙 행위였다. 공동체 일원의 죽음을 슬퍼하고 그를 영원히 기억하기 위한 표시물로서 무덤 자리를 고르고 시신을 안치하고 껴묻거리를 넣고 흙이나 돌로 덮는 과정 자체가 죽은 이를 떠나보내는 하나의 통과 의례였던 것이다. 신석기 시대 사람들은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극복했고, 동시에 이를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계기로 삼았다. 장례에서 일상생활에 사용되었던 물건을 함께 묻는 것은 죽은 이의 사후 생활의 편의를 배려한 것으로, 조상 숭배 및 영혼 불멸의 내세 사상을 보여 준다. 한반도의 [[신석기시대무덤|신석기 시대 무덤]]에서는 다양한 장법(葬法)이 확인된다. [[통영연대도유적|통영 연대도 유적]]·[[통영욕지도조개무지|욕지도 조개더미]]·[[통영상노대도유적|상노대도 유적]], [[여수안도패총|여수 안도 조개더미]] 등과 같이 [[구덩이|구덩이]]를 파고 인골을 펴 묻은 경우([[펴묻기|펴묻기]])가 가장 많다. 또한 [[부산범방유적|부산 범방 유적]]과 [[부산가덕도장항유적|가덕도 장항 유적]] 등에서는 시신 일부를 구부린 상태로 안치한 경우([[굽혀묻기|굽혀묻기]])도 확인되었다. 이 밖에도 [[부산동삼동조도조개더미|부산 동삼동 조개더미]]와 [[진주상촌리유적|진주 상촌리 유적]]의 [[독널무덤|독널[甕棺]]]을 이용한 예, 강원 [[춘천교동동굴유적|춘천 교동 동굴 유적]]과 같이 주거 공간인 동굴에 무덤을 만든 예, [[울진후포리유적|울진 후포리 유적]]과 같이 구덩이 안에 40여 명의 뼈만 추려서 매장한 예 등이 있다. 신석기 시대 제의 유적으로는 산상(山上) 유적이 거론된다. 산상 유적은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해안가의 산 정상부 혹은 능선의 평탄면에 위치한다. 입지 자체가 비(非)일상적이고 해양 지향적 의도성을 지닌 성지(聖地)이다. 이러한 산상 유적에서는 별다른 유구는 확인되지 않지만, 의식주 생활과 직접 연관되는 도구보다는 의례적 성격이 강한 [[돌도끼|돌도끼]], [[옥기|옥기]], [[흙인형|흙 인형]], 붉은 칠 토기 등이 출토되어, 유물에서 비일상성이 두드진다. [[울진죽변리유적|울진 죽변리 유적]], [[울주신암리유적|울주 신암리 유적]], [[부산용호동유적|부산 용호동 유적]], [[부산가덕도동리산유적|부산 가덕도 동리산 유적]], [[부안계화도산상유적|부안 계화도 유적]] 등이 대표적이다. 이와 관련하여 해안가 산상 유적을 어로 집단이 풍어(豐漁)와 안전한 항해를 기원한 해양 신앙의 성지로 보기도 한다. 신석기 시대 사람들은 자연에서 획득한 동물의 뼈나 뿔, 조개, 옥을 가공하여 몸에 착용하기도 하였다. 조개는 다산(多産), 옥은 영원불멸 등 재료의 물성이 상징하는 바가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것들은 집단의 공동 의식에 사용하거나 나쁜 기운을 쫓기 위해서 만든 의례 도구로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부산 동삼동 조개더미의 [[조개가면|조개 가면]], 가덕도 장항 유적의 상어 이빨로 만든 [[장신구|장신구]], 통영 욕지도 유적의 동물 이빨로 만든 [[발찌|발찌]], 울진 후포리 유적의 옥기 등이 있다. 한편 울주 신암리 유적, 부산 동삼동 조개더미, 통영 욕지도 조개더미, [[청진농포동유적|청진 농포동 유적]], [[나선서포항유적|나선 서포항 유적]] 등지에서는 흙이나 동물 뼈를 이용해 만든 사람이나 동물 모양의 조형물이 확인되었다. 이 조형물들은 모두 길이가 10cm 이내로 손에 완전히 잡힐 만한 작은 크기이다. 간혹 사실적인 형태의 조형물도 있지만 대부분이 도식화된 형태의 상징적 조형물이다. 이러한 조형물은 단순한 예술 작품이라기보다는 특정 동물을 신격화하여 숭배하는 [[토테미즘|토테미즘]]의 표현물이거나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기물로서, 당시의 신앙이나 의례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미지== <gallery mode=packed> File:부산_가덕도_장항_유적_출토_1호_인골_조개_팔찌_부장_모습.jpg File:양양_오산리_유적_출토_사람_얼굴_모양_흙_인형.jpg File:통영_연대도_조개더미_출토_동물_이빨_발찌.jpg </gallery> ==참고문헌== * 김은영. (2023). 한반도 신석기시대 해양신앙의 형성과 특징. 부산박물관(편저), <i>신석기시대 해양신앙</i>(pp.186-199). https://www.riss.kr/link?id=M17056845 * 양성혁. (2012). 매장과 의례. 중앙문화재연구원(편저), <i>한국 신석기문화 개론</i>(pp.437-452). 서경문화사. https://www.riss.kr/link?id=M12637098 * 하인수. (2006). <i>영남해안지역의 신석기문화 연구: 편년과 생업을 중심으로</i>. (박사 학위 논문). 부산대학교. https://www.riss.kr/link?id=T10689879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신석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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