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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신석기 시대 조개 제품[新石器時代貝製品]}} ==설명== 조개를 가공하여 만든 조개 제품은 조개의 모양, 색 등의 물리적인 속성과 상징성을 지닌다. 조개는 에너지를 공급하는 식량 자원이라는 점에서 오래전부터 각별한 관심의 대상이 되어 왔으며, 종교, 신화, 설화, 민속, 풍습 등에서 다양한 형태로 표출되었다. 조개 제품의 출현과 사용 시기는 [[후기구석기시대|후기 구석기 시대]]까지 올라가지만 도구로서 혹은 생활 양식의 한 부분으로서 역할과 의미가 있게 된 것은 [[신석기시대|신석기 시대]]부터이다. 조개 제품은 소재의 특성상 지역적인 한계와 도구로서의 제약으로 인해 [[석기|석기]]나 [[뼈뿔연장|뼈뿔연장]]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기능과 보편성이 떨어지는 면이 있다. 그러나 신석기 시대 해안 지역민을 중심으로 각종 생업 도구와 [[장신구|장신구]]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 활용된다. 그뿐만 아니라 재료의 여러 속성(물리성·희소성·외형성 등)이 사회, 문화적 가치와 결부되어 다양한 기능과 의미를 지닌다는 점에서 다른 도구와 차별화되는 특징을 보이기도 한다. 특히 [[조개팔찌|조개 팔찌]]는 신석기 시대의 대표적인 장신구로 널리 사용되며, 지역 집단의 동향과 교류의 실태를 구체적으로 보여 주는 자료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현재까지 확인된 자료에 따르면 신석기 시대의 조개 제품은 대부분 해안 지역에서 채취 또는 채집한 해수 조개류로 제작되었다. 조개 제품의 제작에 이용된 조개류는 투박조개, 피조개, 굴, 새조개, 전복, 가리비, 백합, 개조개, 피뿔조개 등 20여 종에 달한다. 이는 주로 외해의 암초 또는 내만 지역의 조간대에 서식해 당시 사람들이 [[어로활동|어로 활동]] 중에 쉽게 채취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신석기 시대 사람들은 조개 종류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는 특성, 즉 생태성(혈색소 등), 물리성(단단함, 광택, 색 등), 형상성(외형적인 특징), 희소성 등을 적절히 이용하여 여러 가지 조개 제품을 제작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각 특성을 선택적으로 이용해 가공된 조개 제품 중에는 특별한 목적과 사회적 가치를 지니는 것도 있다. [[신석기시대조개제품|신석기 시대 조개 제품]]은 식량 자원을 획득하는 데 사용된 생산 용구와 획득된 자원을 가공하거나 보관하는 데 사용된 [[가공구|가공구]] 및 용기, [[의례활동|의례]] 혹은 정신생활과 관련된 비(非)실용구로 구분된다. 먼저 생산 용구용 조개 제품 중에는 생업 영역에 따라 [[수렵활동|수렵]]·[[채집활동|채집]] 등의 도구도 존재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현재까지 확인된 [[어로구|어로구]]는 [[결합식낚시|결합식 낚시]]와 [[조개추|조개추]]뿐이다. 이는 [[부산동삼동조도조개더미|부산 동삼동 조개더미]], [[통영상노대도유적|통영 상노대도 유적]], [[군산오식도동노래섬조개더미|군산 노래섬 조개더미]], [[완도여서도패총|완도 여서도 조개더미]]에서 출토된 바 있다. 해안 지역의 신석기 시대 사람들에게 어로 활동은 주요 생업이었으며, 어패류가 식량 자원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러한 점에서 앞으로 유적에서 출토되는 다량의 조개를 정밀하게 분석한다면 새로운 형태의 조개 제품이 발견될 가능성도 있다. 조개로 만든 가공구는 돌로 만든 것에 비해 출토 수량이 적고, 그 종류 또한 단순하다. 그러나 조개의 날카로움과 단단함, 쉽게 획득할 수 있는 특성 등을 고려하면 당시 신석기 시대 사람들이 생활 용구로서 널리 이용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까지 확인된 것으로는 어패류나 포유류의 육질, 가죽을 절단·조리하는 [[조개칼|조개칼]]와 조개날, [[토기|토기]]를 제작할 때 그 표면을 정리하는 정면(整面) 도구가 있다. 조개로 만든 용기는 토기 대용으로 음료나 식료를 보관하는 데 사용되었으며, 주로 대형 전복이나 피뿔고둥의 껍질이 재료로 쓰였다. 비(非)실용구는 자료가 많지 않아 구체적인 종류와 성격은 불분명하지만 장신구와 의례구로 구분할 수 있다. 장신구는 조개 제품 가운데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한다. 장착 부위에 따라 머리, 목, 가슴, 팔, 발 장식으로 나눌 수 있지만, 조개 팔찌를 제외하면 실제 유물을 통해 용도를 추정하기는 어렵다. 조개 팔찌는 주로 해안 지역에 분포하며, 부분적이지만 한반도 중부와 남부 내륙 지역에서도 확인된다. 이러한 분포 상태는 착용 습속과 유통 문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동남해안에만 서식하는 투박조개로 만든 조개 팔찌가 [[단양금굴유적|단양 금굴 유적]]이나 군산 노래섬 조개더미, [[보령원산도패총|보령 원산도 조개더미]], [[태안안면도고남리조개무지|태안 안면도 고남리 조개더미]], [[서산대죽리패총|서산 대죽리 조개더미]]에서 출토된 점은 어로민의 활동 영역이 넓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그 분포와 출토 양상에 따르면 조개 팔찌는 해안 지역의 어로민이 주로 착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의례구는 부산 동삼동 조개더미에서 출토된 [[조개가면|조개 가면]]이 유일하다. 조개의 다양한 상징성을 고려하면 주술적, 벽사적 성격의 조개 제품의 존재도 예상되나 출토 예는 없다. 동삼동 조개더미에서 출토된 조개 가면은 집단의 공동 의식이나 축제에서 사용되었거나 벽사 행위와 관련한 주술구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그 성격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어 앞으로 구체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신석기 시대 조개 제품은 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이른 시기부터 출현하여 전 시기에 걸쳐 확인되며, 때로는 먼 지역까지 유통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그 종류와 용도에 따라 여러 가지로 구분되나, 특정한 기능과 용도에 한정되지 않고 필요에 따라 다양하게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미지== <gallery mode=packed> File:부산_동삼동_조개더미_출토_조개_가면.jpg File:부산_동삼동_조개더미_출토_조개_팔찌.jpg </gallery> ==참고문헌== * 하인수. (2006). 신석기시대 패제품의 이용과 종류. 부산고고학연구회논총간행위원회(편저), <i>석헌 정징원 교수 정년퇴임기념논총</i>(pp.73-98). https://www.riss.kr/link?id=M12808137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신석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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