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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신석기 시대 껴묻거리[新石器時代副葬品]}} ==설명== 죽은 사람이 살아있을 때 사용했거나 아꼈던 물건 또는 내세(來世)에서 사용할 물품을 주검과 함께 무덤에 매장하는데, 그 대상물을 껴묻거리라고 한다. 이는 [[후기 구석기 시대|후기 구석기 시대]]에도 확인되지만, [[껴묻거리|껴묻거리]]의 양과 질, 종류가 다양화되고 일반화되기 시작하는 것은 [[신석기시대|신석기 시대]]부터인 것으로 보인다. 껴묻거리는 무덤에 묻힌 사람의 성격과 사회적 지위 등을 파악하고 당시의 사회 구조와 매장 관습, [[장송의례|장송 의례]] 등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껴묻거리를 묻는 행위는 당시 사람들이 죽음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하며, 껴묻거리의 질과 양적인 측면에서 확인되는 사회적 의미를 포함하여 다양한 사유 체계와 정신적인 세계관을 해석할 수 있게 도움을 준다. 신석기 시대 껴묻거리는 일상생활용으로 만들어진 토기류, 옥과 조개, 상어 이빨이나 동물 뼈 등으로 만든 각종 장신구류, 옥과 더불어 당시 가치가 큰 물품으로 여겨지는 흑요석 조각과 흑요석으로 만든 [[돌살촉|돌살촉]] 등의 도구류, [[간돌도끼|간 돌도끼]]·[[간돌살촉|간 돌살촉]]·[[낚시|낚시]]·[[작살|작살]]과 같은 수렵·어로·채집용 석기류 등 대부분이 생활 및 생업 도구이다. 이 중 가장 많이 매장된 껴묻거리는 [[토기|토기]]다. 하지만 [[울진후포리유적|울진 후포리 유적]]이나 [[여수안도조개더미|여수 안도 조개더미]]의 경우 단 1점의 껴묻거리도 부장되지 않았으며, [[울산처용리유적|울산 처용리 유적]]의 경우 극히 일부에서만 확인된다. 또한 [[부장|부장]]이나 매장 의례를 목적으로 특별히 만들어진 토기 역시 보이지 않는다. [[춘천교동동굴유적|춘천 교동 동굴 유적]]과 울진 후포리 유적에서는 특별히 제작된 장대형 간 돌도끼를 주검과 함께 매장하였는데, 이 돌도끼는 실제 생활용과 거리가 멀어 껴묻거리 용도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 외에도 드물지만 [[부산가덕도장항유적|부산 가덕도 장항 유적]] 무덤에서와 같이 붉은색의 안료가 부장된 사례도 있다. 이상의 신석기 시대 껴묻거리 양상을 살펴보면, 한반도 남해안 서부 지역과 동해안 지역에서는 껴묻거리로 토기를 사용했는지가 불확실하지만, 남해안 동부 지역에서는 토기를 함께 묻는 행위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조개 팔찌를 낀 채 발견되는 예는 조개더미가 분포하는 남해안 일대에 국한되고 동해안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껴묻거리 전용인 장대형의 간 돌도끼는 울진과 춘천 지역에서만 확인되며, 옥으로 만든 [[장신구|장신구]]와 [[흑요석|흑요석]]은 전체적으로 수량이 극히 적어 가장 희귀한 껴묻거리에 해당한다. 개인에게 착장된 많은 양의 [[조개팔찌|조개 팔찌]]나, 희귀 껴묻거리 등은 소유자의 집단 내 신분이나 사회적 지위, 성격, 역할 등이 반영된 결과일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해당 무덤들이 특별히 더 크거나 구조가 복잡하지도 않으며, 묘역 내에서 입지가 탁월하거나 공간적으로 분리되는 현상 역시 보이지 않는다. 또한 희귀 껴묻거리가 특정 개인에게 한꺼번에 집중되는 현상도 확인되지 않는다. 따라서 껴묻거리에서 보이는 차이는 어느 정도 수평적으로 분화된 당시 사회를 반영한 결과인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우리나라 신석기 시대의 껴묻거리는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에 비해 소박할 뿐만 아니라 양적으로도 적은 편이며, 심지어 없는 경우도 있다. ==이미지== <gallery mode=packed> File:부산_가덕도_장항_유적_33호_인골_돌도끼_부장_모습.jpg File:부산_가덕도_장항_유적_35호_인골_토기·적색_안료_부장_모습.jpg File:부산_가덕도_장항_유적_6호_인골_조개_팔찌_부장_모습.jpg </gallery> ==참고문헌== * 신종환. (2018). <i>한국 신석기시대 사회 문화상 연구</i>. (박사 학위 논문). 경북대학교. https://www.riss.kr/link?id=T14744795 * 임상택. (2019). 무덤으로 본 신석기시대 어로민의 해양경관 구축. <i>고고학지, 25</i>, 139-163. https://www.riss.kr/link?id=A108733545 * 임학종. (2008). 신석기시대의 무덤. <i>한국신석기연구, 15</i>, 65-115. https://www.riss.kr/link?id=A102089421 * 하인수. (2021). 신석기시대 분묘와 부장품. 복천박물관(편저), <i>제14기 고고학 시민강좌 자료집</i>. * 황철주. (2022). 동해에 인접한 극동아시아 신석기시대의 매장 관습과 사회상. <i>한국신석기연구, 43</i>, 1-34. https://www.riss.kr/link?id=A108197075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신석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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