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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대천리식 집자리[大川里式住居址]}} ==설명== 한반도 [[신석기시대집자리|신석기 시대 집자리]]는 지역 혹은 시기별로 차이점이 있다. 또한 [[집자리|집자리]] 혹은 마을의 입지에 따라 서로가 다른 구조상의 특징을 보인다. 지금까지 발굴 조사된 신석기 시대 집자리 중에서 가장 독특한 입지와 구조를 지닌 집자리는 바로 ‘[[대천리식집자리|대천리식 집자리]]’이다. 대천리식 집자리는 [[신석기시대|신석기 시대]] 중기(기원전 3,500년~기원전 3,000년)에 집중적으로 조성되었으며, 충청 내륙 지역(금강 유역)을 중심으로 분포하고 있다. 대천리식 집자리라는 명칭은 [[옥천대천리유적|옥천 대천리 유적]]의 [[발굴|발굴]] 조사를 통하여 붙여진 것이다. 대천리 유적을 비롯하여 [[청원쌍청리유적|청원(현재의 청주) 쌍청리 유적]]·[[청원영하리유적|영하리 유적]], [[보령관창리유적|보령 관창리 유적]], [[대전관평동유적|대전 관평동 유적]], [[홍성상정리유적|홍성 상정리 유적]]·[[홍성송월리유적|송월리 유적]], [[공주신관동관골유적|공주 신관동 관골 유적]], [[계룡용동리유적|계룡 용동리 유적]], [[연기석삼리유적|연기 석삼리 유적]], [[음성금석리유적|음성 금석리 유적]], [[익산신용리유적|익산 신용리 유적]]·[[익산웅포리유적|웅포리 유적]], [[전주효자동유적|전주 효자동 유적]], [[아산장재리안강골유적|아산 장재리 안강골 유적]]·[[아산성내리유적|성내리 유적]], [[당진소소리유적|당진 소소리 유적]]·[[당진유곡리유적|유곡리 유적]]·[[당진가곡리유적|가곡리 유적]]·[[당진율사리유적|율사리 유적]], [[예산목릭·신리유적|예산 목리 유적]]·[[예산효림리유적|효림리 유적]], [[용인농서리유적|용인 농서리 유적]]·[[용인갈담리유적|갈담리 유적]], [[김포운양동·장기동유적|김포 운양동 유적]], [[화성상리유적|화성 상리 유적]], [[시흥광석동·장현동유적|시흥 장현동 유적]], [[안성양변리유적|안성 양변리 유적]]·[[안성월정리유적|월정리 유적]] 등에서 확인되었다. 입지상의 특징은 능선으로 뻗어 나온 구릉의 정상부에 1기 혹은 2기만 위치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집자리가 위치한 곳은 주변 지형을 두루 살펴볼 수 있는 지리적 조건을 잘 갖추고 있다. 또한 집자리는 길이 방향이 등고선의 흐름과 나란하다는 특징이 있다. 평면 형태는 모두 장방형으로 너비와 길이의 비율이 대부분 1:1.5∼1:2 사이이다. 규모는 대부분 길이 7∼10m, 너비 5∼7m정도이며, 옥천 대천리 유적과 대전 관평동 유적, 계룡 용동리 유적, 화성 상리 유적 집자리의 규모가 가장 크다. 이 집자리들은 비교적 잔존 상태가 양호하여 집자리 내부 구조를 파악하는 데 유용하다. 대천리식 집자리의 내부에서는 [[화덕자리|화덕 자리]]와 기둥 구멍, 출입구 시설, [[저장구덩이|저장 구덩이]], 선반 등 다양한 시설이 확인되고 있다. 화덕은 집자리의 중앙에 설치되어 있거나, 내부 공간 분할이 이루어진 경우에는 생활 공간의 중앙에 설치되어 있다. 집자리마다 1기 혹은 2기가 있으며, 구조는 모두 [[구덩식|구덩식[竪穴形]]]이다. 평면 형태는 원형과 방형이 대부분을 차지하며, 규모는 지름 60~100cm 내외이다. 기둥 구멍은 집자리 내부의 네 모서리 부분에 배치된 4주식(4柱式)이 기본이다. 내부 공간 분할이 이루어진 집자리의 경우, 생활 공간을 중심으로 한 4주식 기둥 배치에 더하여 부속 공간과 돌출된 출입구 부분에도 기둥 구멍이 정연하게 배치되어 있다. 또한 칸막이(옥천 대천리 유적), 벽의 가장자리(옥천 대천리 유적·홍성 상정리 유적·익산 웅포리 유적), 외부(계룡 용동리 유적·홍성 송월리 유적·아산 장재리 안강골)에 기둥 구멍이 배치된 경우도 있다. 집자리의 기둥 구멍이 불규칙한 경우에도 돌출된 출입구 부분이나 단벽에서 기둥 구멍이 확인되고 있어 어느 정도 정형성이 확인된다. 특히 계룡 용동리 유적 집자리에서는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 외곽의 기둥 구멍이 집자리 전체를 감싸고 있는 구조가 나타나 대천리식 집자리의 복원에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이는 공주 신관동 관골 유적 집자리의 외부 도랑[溝] 시설에 관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있으며, 집자리 내부 및 외부 공간 활용에 대한 단서를 제공해 주고 있다. 바닥은 대부분 생토(生土)를 그대로 사용하였고, 출입구 시설은 대부분 돌출된 구조이다. 그밖에 대천리 유적의 집자리에서는 내부에서 2단의 저장 구덩이가 확인되었으며, 성내리 유적 4호 집자리에서는 선반 시설로 추정되는 단 시설이 발견되었다. 초기 연구에서는 대천리식 집자리에서 다양한 패턴이 확인되고 있다는 점으로 미루어, 금강 중·상류지역을 중심으로 분포하는 전형적인 대천리식 집자리가 1차 거점 지역에 해당하고 이후 거주지가 주변 지역으로 확대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그러나 중부 서해안 지역에서 신석기 시대 초기의 집자리 유적이 다수 확인되면서, 대천리식 집자리가 인천 운서동식 집자리의 영향을 받아 성립되었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대규모 마을을 이루던 것이 중부 서해안 일부 지역에서 대천리식 집자리의 모습으로 변화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집자리의 평면 형태는 방형에서 장방형으로 변화하고, 규모도 커지는 경향을 보인다. ==이미지== <gallery mode=packed> File:계룡_용동리_유적_집자리.jpg File:옥천_대천리_유적_집자리.jpg File:화성_상리_유적_집자리.jpg </gallery> ==참고문헌== * 구자진. (2008). 신석기시대 대천리식 집자리의 재검토. <i>호서고고학, 18</i>, 2-27. https://www.riss.kr/link?id=A104649340 * 구자진. (2010). <i>한국 신석기시대의 집자리와 마을 연구</i>. (박사 학위 논문). 숭실대학교. https://www.riss.kr/link?id=T12885018 * 구자진. (2013). 신석기시대 대천리식 집자리의 성립과정에 대한 소고. <i>야외고고학, 18</i>, 5-24. https://www.riss.kr/link?id=T12885018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신석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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