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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대산리 당산 조개더미[定州 大山里堂山貝塚]}} {{유적정보 | 이칭별칭=정주 대산리 당산 조개더미, 정주 대산리 당산 패총 | 키워드=[[민무늬 토기]], [[겹아가리 토기]], [[돋을띠무늬 토기]], [[돌살촉]], [[돌도끼]], [[숫돌]], [[뼈송곳]] | 시대=신석기 | 청동기 | 위치=북한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장호수 | 조성 시기=신석기 | 청동기 | 성격=조개더미 | 소재지=평안북도 정주시 대산리 당산마을 바닷가에서 약 5㎞ 떨어진 지점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설명== 평안북도 정주시 대산리 당산마을 바닷가에서 약 5㎞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다. 1958년에 관개수로 공사와 관련된 일부 구역은 역사박물관에서 발굴 조사하였고, 1991년에는 고고학연구소에서 발굴 조사하였다. 당산마을 서쪽 제직산이 서북쪽으로 길게 뻗어내려 이루어진 당모루 구릉 아래쪽 밭 가운데 남북으로 40m, 동서로 20m 범위에 걸쳐 있다. 1991년 조사에서의 유적의 층위 관계를 보면 위로부터 표토층과 그 아래 재와 조개껍질貝殼이 섞인 흙층, 모래층, 조개껍질층, 그리고 붉은 진흙층 순서로 쌓여 있다. 유물은 모래층을 사이에 두고 붉은 진흙층과 조개껍질층, 그리고 재와 조개껍질이 섞인 흙층에서 나오는데 후자가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 문화층이며, 전자 2개 층이 [[신석기시대|신석기 시대]] 문화층이다. 청동기 시대 문화층에서는 갈색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 [[겹아가리토기|겹아가리 토기(二重口緣土器)]], [[돋을띠무늬토기|돋을띠무늬 토기(突帶文土器)]], [[돌살촉|돌살촉]], [[돌도끼|돌도끼(石斧)]], [[숫돌|숫돌(砥石)]], 그리고 [[골제송곳|뼈송곳(骨錐)]] 등 도구들이 나왔다. 민무늬 토기에 보이는 특징은 아래 문화층의 것과 비교하면 손잡이가 없어지고, 토기 바탕흙(胎土)에 모래를 비짐으로 섞어 만든 납작 밑의 그릇이며, 겹아가리와 덧띠로 장식한 것들이 많다. 토기 갖춤새는 중국 [[신러유적|신러 유적(新樂遺蹟)]]의 위 문화층과 유사하다고 보며, [[용천신암리유적|신암리]], [[용천쌍학리유적|쌍학리 유적]] 등에서 나오는 토기와 비교된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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