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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오트라르 유적(Памятник Отрар)}}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오트라르 유적(Памятник Отрар)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카자흐스탄 | 소재지=카자흐스탄 남부 투르케스탄주(Туркестан) | 성격=복합유적 | 키워드=[[실크로드]], [[중세 주화]], [[주조 화폐]], [[농업]], [[유목]], [[교통 요지]]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강인욱 }} ==설명== 카자흐스탄 남부 투르케스탄주(Туркестан)에 위치하는 대표적인 실크로드의 유적이다. 오트라르는 아리스(Арыс)강과 시르다리야(Сырдарья)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하여 농업과 유목 모두 가능하다. 아리스강을 따라가면 타라스(Тараз)와 신장(新疆) 지역으로 이어지는 교통의 요지로, 석국(타슈켄트Ташкент)과 아랄(Арал) 해로도 이어진다. 유적은 1세기에 형성되어 19세기까지 실제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오트라르는 중세 이후 다양한 여행가나 역사가들의 서술에 반드시 등장할 정도로 이 지역의 요충지였다. 현재도 오트라르라는 도시가 있으며, 도시에서 다소 떨어진 곳에 [[오트라르토베유적|오트라르토베 유적(Памятник Отрартобе)]]이 남아있다. 그 전성기는 몽골 제국 시기이지만 존속 시기는 1세기부터 18세기까지이다. 오트라르 유적은 20세기 초 간단한 발굴 조사로 그 실체가 밝혀졌다. 1940년대에 이 지역의 고고학 기틀을 세운 베른시탐(Бернштам А.Н.)의 시굴 조사를 통해서 카자흐스탄의 실크로드를 대표하는 유적임이 증명되었다. 이에 1969년 오트라르고고학조사단Отрарская археологическая экспедиция(남카자흐스탄고고학조사단Южно-Казахстанская комплексная археологическая экспедиция)이 조직되어 지금까지 조사를 이어가고 있다. 발굴 조사를 통해 제티수(Жетысу), 석국, 소그디아나(Согдиана)의 [[중세주화|중세 주화]]와 함께 지역의 독자적인 [[주조화폐|주조 화폐]]가 발견되었다. 즉, 오트라르가 7~8세기 전반에 독자적인 국가로 기능했음을 알 수 있다. 그 이전 시기의 경우 문화층이 지나치게 깊게 위치하여 아직 조사되지 않았다. 하지만, 중국 한나라 대에 실크로드의 오아시스 도시들이 성립되었기 때문에 이전 시기부터 주요 도시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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