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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아사히 유적(清須 朝日遺跡)}}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아사히 유적(清須 朝日遺跡)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일본 아이치현(愛知県) 기요스시(清須市) 아사히(朝日) 일원 | 성격=조개더미 | 키워드=[[집자리]], [[뼈뿔연장]], [[골각제]], [[청동 종방울 조개더미군]], [[괭이]], [[자루]], [[청동 거울]], [[점 뼈]]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22 | 집필자=임지영 }} ==설명== 일본 아이치현(愛知県) 기요스시(清須市) 아사히(朝日) 일원에 위치한다. 충적 평야의 동서방향 미고지를 중심으로 동서 1.4㎞, 남북 0.8㎞의 넓은 범위에서 [[집자리|집자리]]와 무덤이 확인되었다. 또 [[취락|취락]]을 둘러싼 다양한 [[방어시설|방어 시설]]은 전란의 시대였음을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출토 유물은 [[토기|토기]], [[석기|석기]], [[뼈뿔연장|뼈뿔연장]], [[목기|목기]], 금속기 등이 다량으로 확인되었다. [[적색토기|적색 토기]], [[골각제|골각제(骨角製)]] 장신구, [[제의|특수 제기(祭器)]]인 [[청동종방울|청동 종방울(銅鐸)]] 등 도카이(東海) 지역의 야요이 문화를 대표하는 중요 유적이다. 1929년 조사에서 [[패총|조개더미군]]이 확인되면서 ‘아사히 조개더미’로 불렸고, 192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의 조사도 양호한 조개더미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1972년 국도 302호 건설 및 자동차 도로 건설 공사의 일환으로 조사가 시작되어 2007년까지 대규모 조사가 이루어졌다. 조사 결과 조몬 시대 후기, 야요이 시대 전기부터 고훈 시대 전기까지의 다양한 유구가 확인되었다. 시기별 특징을 살펴보면 조몬 시대 후기에는 토기 편만 확인된다. 야요이 시대 전기에는 지름 약 200m의 소규모 환호 취락이 나타나는데, 중기가 되면 대규모 취락으로 발전한다. 환호 취락의 규모가 가장 커지는 시기에는 면적이 약 7㏊로 동일본 최대 규모이며,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생활한 것으로 추정된다. 야요이 시대의 환호 취락은 환호의 외측에 [[토루|토루(土壘)]]를 설치하는 구조가 일반적인데 다중으로 환호가 돌아가는 경우 환호와 환호 사이에도 토루를 두는 경우가 있다. 아사히 유적은 남쪽 거주역 사이에 다중 환호와 토루를 쌓고 그 외측에 가지가 있는 나무를 엮은 방어용 가시 울타리(逆茂木)를 경사지게 세워 2중으로 설치하였다. 이는 일본 열도에서는 최초로 발견된 사례이다. 유물은 조개더미의 남쪽에서 [[온가가와계토기|온가가와계 토기(遠賀川系土器)]]가 출토되었다. 곡지(谷地)에서는 [[가래|가래]], 괭이, [[절구|절구]], [[공이빗|공이 빗]] 등의 목제품이 다량 출토되었으며, 목제 절구를 전용(轉用)한 [[우물|우물]]도 발견되었다. 이러한 농경구를 통해 수전의 존재를 짐작할 수 있다. 또 곡지를 에워싼 남북 집자리 영역에서는 석기, 토기, 청동 살촉, 청동 거울(銅鏡), 청동 종방울편, 청동 종방울 모양 토제품, [[점뼈|점뼈(卜骨)]] 등 당시 생활을 알 수 있는 유물이 출토되어 ‘야요이 시대 교과서’로 불린다. 주거 지역의 외측인 유적의 동쪽에 야요이 시대 중기 전반부터 방형 [[주구묘|도랑무덤(周溝墓)]]으로 이루어진 [[묘역|묘역]]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도랑무덤은 476기 이상 확인되었으며, 일률적인 분포는 보이지 않지만 축조 시기, 규모, 형태, 공헌 토기의 양상에 차이가 있다. 야요이 시대 전기의 방형 도랑무덤은 기나이 지역에서 가장 먼저 출현하며, 그 주변 지역은 기나이 문화의 영향을 받은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아사히 유적은 온가가와계 토기를 통해 서쪽 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드러나며, 토기로 대표되는 물질문화와 방형 도랑무덤으로 대표되는 정신문화를 동시에 받아들인 것으로 볼 수 있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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