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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서일본의 구멍무늬 토기[西日本의 突帯文土器]}} {{개념정보 | 한글표제어=서일본의 구멍무늬 토기[西日本의 突帯文土器] | 시대=청동기 시대 | 관련 지역=산인 | 규슈 | 키워드=[[구멍무늬 토기]], [[구로카와식 토기]], [[야요이 문화]], [[역삼동식 토기]], [[이타즈케Ⅰ식 토기]], [[조몬 문화]], [[하다라식 토기]], [[혹무늬 토기]]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천선행 }} ==설명== 아가리에 구멍을 뚫는 특징은 일본 열도에서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혹무늬토기|혹무늬 토기(突瘤土器)]]로 간토 지역과 홋카이도에서 주로 출토되며, [[조몬시대|조몬 시대]] 전기부터 중기까지 유행한다. 또 하나는 서일본의 구멍무늬 토기로 조몬 시대 만기 중엽에 등장하며, 주로 산인(山陰) 지역 및 규슈 지역에 집중 분포한다. 따라서 시기와 지역의 차이로 볼 때, 혹무늬 토기와 구멍무늬 토기는 직접적 관련성이 희박하다. 서일본의 구멍무늬 토기는 일찍부터 한반도로부터의 영향으로 여겨져 왔다. 특히 한반도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 전기 [[역삼동식토기|역삼동식 토기]]를 대표하는 [[구멍무늬토기|구멍무늬 토기]]의 영향에 의해 형성된 것으로 이해되었다. 때문에 구멍무늬 토기가 출토되는 청동기 시대 전기와 [[구로카와식토기|구로카와식 토기(黒川式土器)]]가 병행하는 것으로 설정되었다. 이렇듯 구멍무늬 토기는 조몬 시대 만기 중엽의 구로카와식 단계에 출현하여 [[야요이시대|야요이 시대]]인 [[이타즈케Ⅰ식토기|이타즈케Ⅰ식 토기(板付Ⅰ式土器)]]까지 지속되었다. 한편, 한반도의 구멍무늬 토기가 북부 규슈 지역으로 먼저 유입된 후 점차 남부 규슈 지역과 산인 지역으로 확산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즉, 일본 열도 내 구멍무늬 토기는 하나의 계열만 존재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최근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 연구와 산인 지역 및 남부 규슈 지역 구멍무늬 토기의 출토 사례가 증가하면서 일본 내 구멍무늬 토기의 계통과 변화 양상이 일률적이지 않다는 견해가 제기되었다. 즉, 구멍무늬 토기가 규슈 지역에서는 구로카와식 토기 신단계에 출현하지만, 산인 지역에서는 보다 이른 구로카와식과 병행하는 [[하다라식토기|하다라식 토기(原田式土器)]] 고단계에 출현하는 것이다. 또한 규슈 지역 남부의 구멍무늬 토기는 밖에서 안으로 찌르지만 관통되지 않은 것이 압도적으로 많고, 북부에서는 역시 밖에서 안으로 찔렀으나 관통된 것이 많다. 반면, 산인 지역에서는 안에서 밖으로 찌르지만 관통되지 않은 형태가 많기 때문에 산인 지역과 규슈 지역 구멍무늬 토기의 계통이 다를 가능성이 지적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결과를 바탕으로 한반도로부터 북부 규슈로의 교류가 단선적인 경로가 아니라, 한반도와 산인, 한반도와 남부 규슈라는 다원적 교류 관계가 형성되어 있었다고 보기도 한다. 일본 열도에 구멍무늬 토기 요소가 출현하는 시기에 [[누키가와유적|기타규슈시 누키가와 유적(貫川遺跡)]]에서 [[반달돌칼|반달 돌칼]], [[구이시바루유적|구이시바루 유적(礫石原遺跡)]]에서는 돋을띠 마디무늬(節狀突帶文)와 유사한 토기와 볍씨 압흔(壓痕)이 확인되었다. 즉 한반도로부터 구멍무늬 토기 요소가 유입되는 시점에 한반도의 청동기 시대 문화 요소도 간헐적으로 확인된다. 따라서 서일본의 구멍무늬 토기는 [[조몬문화|조몬 문화]] 안에서 한반도와의 교류 관계를 바탕으로 하여 한반도의 도작 농경문화가 유입될 수 있었다. 이후 일본 열도는 점차 수렵·채집의 조몬 문화에서 본격적인 수도작 농경 중심의 생산 경제를 토대로 한 [[야요이문화|야요이 문화]]로 발전한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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