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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샤오잉쯔 유적(延吉 小營子遺蹟)}}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샤오잉쯔 유적(延吉 小營子遺蹟) | 이칭별칭=소영자 유적(延吉 小營子遺蹟)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중국 | 소재지=중국 지린성(吉林省) 옌볜 조선족 자치주(延邊朝鮮族自治州) 옌지시(延吉市) 샤오잉향(小營鄕) 샤오잉춘(小營四村)의 베이산(北山) 남사면 | 성격=고분 | 키워드=[[돌널무덤]], [[류팅둥 문화]]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오강원 }} ==설명== 중국 지린성(吉林省) 옌볜 조선족 자치주(延邊朝鮮族自治州) 옌지시(延吉市) 샤오잉향(小營鄕) 샤오잉춘(小營四村)의 베이산(北山) 남사면에 위치한다. 1938년 후지타 료사쿠(藤田亮策)가 유적의 전체 규모 동서 길이 약 100m 가운데 중앙 일부 지점인 길이 25m, 너비 8m를 조사하였다. 조사 결과 52기의 [[돌널무덤|돌널무덤(石棺墓)]]을 확인하였으나, 자세한 보고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후 중국 연구자들의 지표 조사를 통해 유적의 전체 규모와 무덤 수백 기가 확인되었다. 출토 유물의 일부는 현재 서울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돌널무덤은 대부분 길이 1.5~1.6m, 너비 0.4~0.5m, 깊이 0.25~0.3m이며, 이 가운데 A30은 길이 2.3m, 너비 0.5m, 깊이 0.3m로 규모가 가장 크다. 피장자는 대부분 단인장(單人葬)에 바로 펴묻기(仰身直肢葬)하였다. 일부 다인장(多人葬)과 굽혀묻기(屈肢葬), 화장(火葬)한 예도 확인되었다. 유적은 지린 중부 지역의 [[시퇀산문화|시퇀산 문화(西團山文化)]] 돌널무덤과는 달리, 2~3기의 돌널이 짧은 벽 또는 긴 벽, 뚜껑돌(蓋石)과 바닥돌(底石)을 공유한 예가 확인되었다. 이외 다수의 무덤 상면에서 0.5~1m의 봉석토(封石土)의 존재가 확인되어, 이례적이지만 이 시기 이 일대에서 돌널무덤에 봉토가 시설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출토 유물로는 [[심발형토기|심발형 토기(深鉢形土器)]], 대접 등의 토기류와 [[돌도끼|석부(石斧)]], [[돌끌|석창(石槍)]], [[석촉|석촉]], [[흑요석기|흑요석기(黑曜石器)]], [[환상석기|환상 석기(環狀石器)]], 석제 [[방추차|방추차]] 등의 석기류가 있다. 이외에 [[뼈화살촉|골촉(骨鏃)]], [[골도|골도(骨刀)]], [[골제첨두기|골제 첨두기(骨製尖頭器)]], [[뼈바늘|골침(骨針)]] 등의 골각기와 돼지 어금니 장식, [[패환|패환(貝環)]], [[옥환|옥환(玉環)]] 등이 있다. 이 유적의 문화 유형과 성격은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다량의 흑요석기, 석기 제작 수법, 토기의 기종과 기형, 돌널무덤의 보편적인 채용 등을 고려할 때, 옌볜 지역의 청동기 문화가 [[싱청문화|싱청 문화(興城文化)]]에서 [[류팅둥문화|류팅둥 문화(柳庭洞文化)]]로 전환되는 시점, 또는 류팅둥 문화가 정형화되는 과정의 이례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유적의 연대는 기원전 11~10세기경 전후로 추정된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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