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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가네노쿠마 유적(福岡 金隈遺跡)}}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가네노쿠마 유적(福岡 金隈遺跡) | 이칭별칭=후쿠오카 가네노쿠마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일본 | 소재지=일본 후쿠오카현(福岡県) 후쿠오카시(福岡市) 하카타구(博多区) 가네노쿠마 1정목(金の隈1丁目) | 성격=복합유적 | 키워드=[[독무덤]], [[움무덤]], [[돌널무덤]], [[야요이 시대]], [[고호우라 조개팔찌]], [[간 돌살촉]], [[구슬옥 드리개]]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김상민 }} ==설명== 국가 사적. 일본 후쿠오카현(福岡県) 후쿠오카시(福岡市) 하카타구(博多区) 가네노쿠마 1정목(金の隈1丁目)에 위치한다. 1968년 도로 개설 공사 중 [[독무덤|독무덤(甕棺墓)]]과 사람 뼈가 발견되어, 1969·1970년 후쿠오카시교육위원회(福岡市教育委員会)가 조사하였다. 조사 결과 독무덤 348기, [[움무덤|움무덤(土壙墓)]] 119기, [[돌널무덤|돌널무덤(石棺墓)]] 2기가 확인된 [[야요이시대|야요이 시대]] 공동묘지이다. 유적은 후쿠오카시 동쪽을 가로 지르는 미카사강(御笠川)을 따라 남북으로 뻗은 해발 100~150m의 쓰키구마(月隈) 구릉 하단부에 입지한다. 유구는 남북으로 긴 구릉의 능선상에 위치하며 단일 지역 내 유구의 밀집도가 높아 중복 관계를 통해 유구 간에 조성 순서를 파악할 수 있다. 독무덤은 G-5지구의 남쪽 고지(高地)부터 군집을 이룬다. 시기는 [[긴카이식 토기|긴카이식 토기(金海式土器)]]와 병행하는 야요이 시대 중기 전엽으로, [[가네노쿠마Ⅰ식토기|가네노쿠마Ⅰ식 토기(金隈Ⅰ式土器)]]에서 [[가네노쿠마Ⅴ식토기|가네노쿠마Ⅴ식 토기(金隈Ⅴ式土器)]]에 해당한다. [[독널|독널]]의 매장 방식은 초기에는 크기가 비슷한 [[독|독(甕)]]의 아가리를 맞대어 수평에 가깝게 매장하였다(橫置). 이후에는 [[가네노쿠마Ⅲ식의대형독널|가네노쿠마 Ⅲ식의 대형 독널]]을 비스듬하게 기울여서 매장하였다(斜置). 이와 같은 독널 매장 방식의 변화는 독널 내 주검을 넣는 방식의 차이로, 관에 시신을 머리부터 넣던 방식에서 발부터 넣는 방식으로 변화된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매장 방식의 변화에 대해 경험적으로 시신 매장의 합리성을 지향하였다고 추정하기도 한다. 보고자는 군집화된 독널이 조성되어 성행한 시기를 야요이 시대 중기 전엽부터 후기 초기로 편년하였다. 대부분의 움무덤은 독무덤에 의해 파괴되어 독무덤 보다 이른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움무덤 D25를 파괴하고 조성된 독무덤 K129([[가네노쿠마Ⅰ식|가네노쿠마Ⅰ식]])의 사례는 움무덤의 조성 시기를 야요이 시대 전기로 상향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돌널무덤도 [[가네노쿠마Ⅴ식|가네노쿠마Ⅴ식]] 이후에 축조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북부 규슈의 무덤이 야요이 시대 후기가 되면 [[매장주체부|매장 주체부]]가 돌널무덤으로 바뀌는 것과 동일하다. 한편, 독널 안에서 출토된 다량의 사람 뼈는 야요이 시대 공동묘지의 구조를 추정하는 근거가 된다. 총 136개체의 사람 뼈가 발견되었으며, 그중 29개체 대한 형질 인류학적 분석이 이루어졌다. 평균 신장은 남성 162.7㎝, 여성 151.3㎝로 [[조몬시대|조몬 시대]] 사람 보다 크며, 두상의 길이나 넓이 등에서도 형질적 특이성이 확인되었다. 또한, [[야마구치현시모노세키시도이가하마유적|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시 도이가하마 유적]]과 함께 한반도 남부 지역의 사람 뼈와 유사성이 강해 한반도와의 교류를 통한 혼혈인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사람 뼈 분석을 통해 형질적 특징과 묘역 내 위치, 발치(拔齒)한 사람 뼈와 [[껴묻거리|껴묻거리]]를 매납한 사람 뼈에 주목하여 공동묘지 내에서도 사회적 신분의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독널 내 발치된 사람 뼈가 확인되는 현상이나 [[고호우라조개팔찌|고호우라 조개팔찌(貝釧)]]나 [[간돌살촉|간 돌살촉]], [[구슬옥드리개|구슬옥 드리개(垂飾丸玉)]] 등이 부장되는 현상이 보이는 독널과 그렇지 않은 독널은 피장자의 사회적 신분이 다르다고 보았다. 보고자는 발치 풍습을 포함하거나 껴묻거리가 있는 피장자를 사제(祀祭)로 추정하였다. 또한 가네노쿠마 유적은 야요이 시대 전기부터 중기에 이르는 공동묘지 내 관의 형식과 매장 방식, 시신의 구성 등 변화를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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