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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흔암리 유형(欣岩里類型)}} {{개념정보 | 한글표제어=흔암리 유형(欣岩里類型) | 시대=청동기 시대 | 키워드=[[토기]], [[역삼동식 토기]], [[가락동식 토기]], [[구멍무늬 토기]], [[골아가리 토기]], [[붉은 간 토기]], [[팽이 토기 문화]], [[역삼동 유형]], [[가락동 유형]], [[겹아가리 짧은 빗금무늬 토기]]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김권중 }} ==설명== 흔암리 유형은 [[역삼동식토기|역삼동식 토기(驛三洞式土器)]]와 [[가락동식토기|가락동식 토기(可樂洞式土器)]]가 공반되거나 일정한 토기에 두 양식의 장식 속성이 복합되어 나타나는 토기군을 지칭한다. 이것은 두만강 유역을 중심으로 하는 동북한 지역 [[구멍무늬토기|구멍무늬 토기(孔列文土器)]], [[골아가리토기|골아가리 토기(口脣刻目文土器)]], [[붉은간토기|붉은 간 토기(赤色磨硏土器)]] 등의 역삼동식 토기와 서북한 지역 [[팽이토기문화|팽이 토기 문화(角形土器文化)]]의 영향을 받은 가락동식 토기가 결합된 유형으로 본 것이다. 이후 [[역삼동유형|역삼동 유형]]과 [[가락동유형|가락동 유형]]이 한강 유역이나 원산만 일대의 동해안 북부 지역에서 융합하여 흔암리 유형을 형성한 것으로 이해하였다. 1990년대 이전까지는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 이른 시기를 대표하는 유형으로 이해하는 것이 통설(通說)이었다. 그러나 흔암리 유형이 흔암리식 유물 복합체(遺物複合體) 간의 차이가 크다는 점을 들어 동일한 문화 기반을 가진 주민 집단을 반영하는 유형으로 보기 어렵다는 견해가 제시되었다. 실제 흔암리 유형은 구멍무늬 토기와 [[겹아가리짧은빗금무늬토기|겹아가리 짧은 빗금무늬 토기(二重口緣短斜線文土器)]]의 결합이라는 차이점 외에는 역삼동 유형과 차이가 없다. 이후 흔암리 유형의 겹아가리 짧은 빗금무늬 토기를 제외한 토기상과 역삼동 유형의 구멍무늬 토기, 골아가리 토기의 조합이 거의 동일하고, 석기상과 주거 구조는 다르지 않기 때문에 ‘역삼동·흔암리 유형’이라는 새로운 명칭이 제안되기에 이르렀다. 흔암리 유형은 현재는 거의 지지되지 않지만 동북한 지역과 서북한 지역의 물질 문화가 남한 청동기 시대 물질 문화의 형성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본 점에서 학사적 의미가 있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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