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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환구(環溝)}} {{개념정보 | 한글표제어=환구(環溝) | 시대=청동기 시대 | 관련 유적=수원 율전동 유적 | 키워드=[[도랑]], [[덧띠 토기]]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이형원 }} ==설명== 환구(環溝)는 원형이나 타원형, 또는 방형으로 [[구|도랑]]을 파서 만든 유구를 말한다. 환구의 규모는 지름 30m부터 100m 이상인 것도 있으며, 도랑은 대체로 한 줄인 것이 많지만 2~3줄인 것도 있다. 한 바퀴 전체를 파낸 것은 확인되지 않았으며 대부분 한 두 곳은 끊어져 있는데, 이 단절된 부분은 출입구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환구는 방어 시설 또는 구획 시설로서 마을을 감싸는 [[환호|환호(環濠)]]와 다르게 주거 공간을 에워싸지 않는 것이 특징이며, 그 내부 공간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의례를 행한 것으로 추정한다. 환구가 자리잡은 곳은 주로 구릉의 정상부가 대부분이지만, [[구리토평동유적|구리 토평동 유적]]과 같이 강변 충적지에서도 발견된다. 청동기 시대의 환구는 기원전 13세기의 이른 시기부터 기원전 3세기의 늦은 시기까지 오랜 기간에 걸쳐서 존속했다.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구리 토평동 유적을 비롯해서 [[평택용이동유적|평택 용이동]], [[화성쌍송리유적|화성 쌍송리]], [[부천고강동유적|부천 고강동]], [[안성반제리유적|안성 반제리]], [[오산청학동유적|오산 청학동]], [[화성반월동동학산유적|화성 동학산]], [[화성정문리유적|화성 정문리]], [[울산연암동유적|울산 연암동]], [[완주구암리유적|완주 구암리 유적]] 등이 있다. 기원전 13~12세기의 연대를 가지는 구리 토평동 유적은 마을 중앙부에 도넛 모양의 도랑을 파서 구획한 뒤 그 안에 원형의 환구를 만들었으며, 이 환구를 중심으로 집들이 정연하게 배치되어 있는 양상이다. 집의 출입구가 모두 환구 쪽을 향하는 것도 환구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마을의 구조적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마을에서 환구는 구성원들이 서로 소통하고 상호 작용하는 광장일 뿐만 아니라, 축제의 장이기도 하며 때론 각종 의식을 치르는 신성한 영역에 해당한다. 기원전 12~9세기에 해당하는 구암리 유적, 용이동 유적과 쌍송리 유적도 마을의 중심부에 환구가 위치하는 현상은 토평동 유적과 공통되는 점이다. 토평동 유적처럼, 마을 중앙부에 구획된 경계 시설로서 광장을 만들거나 집들이 모여 있는 거주 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의례 공간을 조성하는 현상은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 [[송국리문화|송국리 문화]] 시기에서 [[덧띠토기문화|덧띠 토기 문화]] 시기에도 확인되고 있다. 물론 마을 내부에 배치된 광장과 마을 외부의 특정한 공간에 위치한 의례 공간은 그 성격이 다를 가능성이 높다. 환구는 [[덧띠토기|덧띠 토기(粘土帶土器)]]가 유행한 시기의 유적에서 집중적으로 확인되었다. 비교적 높은 구릉의 정상부 또는 사면부에 입지하면서 주변을 조망하기 좋은 곳에 위치하는 특징이 있다. 부천 고강동 유적을 비롯하여 [[수원율전동유적|수원 율전동]], 화성 동학산 및 정문리, 오산 청학동 및 [[오산가장동유적|가장동]], 안성 반제리 유적 등이 있다. 이 유적들의 환구 내부에서는 집들이 확인되지 않고 큰 자연 바위가 있거나 돌을 쌓아 놓은 [[돌무지|돌무지(積石)]]가 배치되어 있다는 점에서 일상적인 생활 공간이 아니라 의례와 관련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환구에서 행해지는 의례는 하늘과 관련된 천신 숭배와 연결시키는 견해도 있다. 환구는 주로 원형 또는 타원형의 형태를 띠며 규모에 따라 지름 30m 정도의 소형과 100m 이상인 대형으로 구분된다. 소형으로는 부천 고강동 유적과 안성 반제리 유적이 있으며, 대형으로는 화성 동학산 유적, 오산 가장동 유적, 수원 율전동 유적 등이 있다. 소형 환구가 있는 유적 중에서 반제리 유적은 환구 외부의 주변에 가옥들이 분포하는 것이 특징이다. 대형 환구가 있는 유적은 대부분 주변에 주거 시설이 들어서지 않았거나 있어도 매우 미약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이에 대해서 소형 환구는 개별 취락 단위의 의례 공간이며, 대형 환구는 복수의 취락 단위가 운영한 것으로 이해하면서 유적간 거리를 고려한 제의권의 범위는 2~6㎞로 추정하는 견해가 있다. 또한, 덧띠 토기 문화 시기의 제장(祭場)은 마을과 분리되어 발견되기도 하는데, 이는 여러 마을의 구성원들이 제장을 공동으로 사용했다는 점과 제의권을 장악한 권력자가 존재했을 가능성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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