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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화산리 유적(慶州 花山理遺蹟)}}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화산리 유적(慶州 花山理遺蹟) | 이칭별칭=경주 화산리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경상북도 경주시 천북면 화산리 산176-8, 산185-1 일원 | 성격=복합유적 | 키워드=[[집자리]], [[구덩식 화덕 자리]], [[벽 도랑]], [[붉은 간 토기]]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윤형규 }} ==설명== 경상북도 경주시 천북면 화산리 산176-8, 산185-1 일원에 위치한다. 공장 건립에 앞서 2012년 조사하여, [[집자리|집자리]] 8기를 확인하였다. 유적은 황학산(해발 195m)에서 남동쪽으로 뻗어 내린 완만한 사면부를 따라 입지한다. 유적은 600m 거리에 위치한다. 화산리 산176-8 유적에서는 집자리 4기가 확인되었다. 이 중 1호 집자리는 장방형으로 길이 5.54m, 너비 3.9m, 깊이 0.17m이며, 내부에는 동쪽으로 치우쳐 [[구덩식화덕자리|구덩식(竪穴式) 화덕 자리]] 1개가 확인되었다. [[벽도랑|벽 도랑(壁溝)]]은 ‘ᄃ’자 모양으로 남아 있으며, 남동쪽 모서리에는 배수용으로 추정되는 [[외부돌출구|외부 돌출구(外部突出溝)]]가 설치되어 있다. 이 밖에 2~4호 집자리는 파괴가 심한 편이지만, 남아 있는 모습을 통해 1호와 유사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출토 유물은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 편, [[돌도끼|돌도끼]], [[숫돌|숫돌(砥石)]], [[공이|공이]]가 확인되었다. 화산리 산185-1 유적에서는 집자리 4기가 확인되었다. 집자리는 방형 2기(2·3호), 장방형 1기(4호)로 구분되며, 길이 3.8~4.8m, 너비 3.34~3.78m, 깊이 0.25~0.8m이다. 3호는 중앙에 구덩식(竪穴式) 화덕 자리 1개가 있다. 벽면에는 ‘ᄆ’자 형태의 벽 도랑(壁溝)과 남동쪽 모서리에 외부 돌출구와 같은 배수로(排水路)를 설치하였다. 바닥에서 불에 탄 목재가 다수 발견되었지만, 유물이 확인되지 않아 의도적으로 불을 질렀을 것으로 추정된다. 2·4호의 중앙에서는 6주식(柱式)의 기둥 구멍이 배치되어 영남의 동해안 지역에서 주로 확인되는 집자리 구조와 동일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출토 유물은 민무늬 토기류의 [[항아리|항아리(壺)]], [[바리모양토기|바리(鉢)]], [[붉은간토기|붉은 간 토기]], 미완성 석기 등이 확인되었다. 유적의 연대는 3호 집자리의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을 통해 2690±40 BP(보정 연대 기원전 850년)로 확인되었다. 이 밖에도 황학산 능선 일대의 완만한 사면 일대에는 경주 신당리 산22·산26-1·모아리 37 유적 등에서도 집자리가 다수 확인된 바 있어 이 일대를 중심으로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부터 대규모의 마을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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