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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홈자귀[有溝石斧]}} {{개념정보 | 한글표제어=홈자귀[有溝石斧] | 이칭별칭=결입 석부, 오목자귀, 유구석부 | 시대=청동기 시대 | 키워드=[[벌채 석부]], [[턱자귀]], [[송국리 유형]]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배진성 }} ==설명== 홈자귀(有溝石斧)는 목재 도구를 만드는 공구(工具)로서 날(刃)은 한쪽에만 있으며 그 반대쪽에는 [[나무자루|나무 자루]]에 착장하여 끈으로 묶기 위한 오목한 홈(溝)이 있다. ‘오목자귀’, ‘결입 석부(抉入石斧)’, ‘유구석부(有溝石斧)’ 라고도하며 길이는 8~17㎝, 단면은 마름모꼴이며 날의 반대면은 비스듬히 경사지면서 홈으로 연결되는 것이 가장 대표적인 형태이다.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의 [[벌채석부|벌채 석부(伐採石斧)]], [[돌대팻날|돌대팻날(扁平片刃石斧)]], [[돌끌|돌끌(石鑿)]] 등과 달리 홈자귀는 시기에 따라 일정한 형식의 변화를 보여준다. 따라서 청동기 시대 편년의 지표로도 이용되는데, 특히 [[송국리유형|송국리 유형]]의 표지적인 유물의 하나로서 송국리 문화의 파급 여부를 확인하는데 중요한 증거 자료이다. 벌채 석부로 잘라낸 나무로 만들고자 하는 도구의 전체적인 형태를 다듬는 1차 가공구이며, 대부분이 [[집자리|집자리]] 내에서 출토되지만 간혹 [[고인돌|고인돌]]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본격적인 농경 사회에 들어선 송국리 유형 단계에 홈자귀가 가장 성행하였는데, 이는 그 만큼 목제 농경구(木製農耕具)의 생산이 활발하였음을 의미한다. 중국이나 대동강 유역의 [[턱자귀|턱자귀(有段石斧)]]에서 발생했다는 설이 있었으나, 근래에 와서는 남한의 주상 편인 석부가 형식 변화하여 기능이 향상되는 과정에서 발생하였다는 설이 유력하다. 즉 [[역삼동유형|역삼동 유형]] 및 [[흔암리유형|흔암리 유형]] 단계의 주상 편인 석부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소형화되고 날의 반대 면에 끈을 묶기 위한 홈이 생기면서 송국리 유형 단계가 시작되기 직전에 홈자귀로 완성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송국리 유형 단계의 홈자귀는 주상 편인 석부의 가장 발달된 형태라고 할 수 있으며, 기능적인 면에서도 이전 시기의 주상 편인 석부에 비해 효율성이 향상되었다. 이후 [[덧띠토기|덧띠 토기(粘土帶土器)]] 단계에도 출토되지만, 송국리 유형 단계에 비해 크기가 커지는 등 형식 변화를 일으키면서 기능의 효율성은 낮아지는 바, 철기가 석기를 점진적으로 대체하는 현상과 관련된다. 분포 지역을 보면 함경북도·양강도·자강도를 제외한 한반도 전역과 일본 열도에 한정되며, 중국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벌채 석부·대팻날 도끼·돌끌 등의 공구류는 중국에서 먼저 사용되었는데 비해 홈자귀는 한반도에서 처음 출현하여 유행한 독특한 석기이다. 일본 열도의 [[야요이시대|야요이 시대(彌生時代)]] 초기 유적에서도 출토됨으로써 일본 야요이 시대의 초기 도작 농경 문화가 한반도의 영향을 받아 성립되었다는 설을 뒷받침하는 유력한 고고학적 증거의 하나이기도 하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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