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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호남리 남경 유적(平壤 湖南里 南京遺蹟)}}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호남리 남경 유적(平壤 湖南里 南京遺蹟) | 이칭별칭=평양 호남리 남경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북한 | 소재지=평양직할시 삼석구역 호남리 남경마을 | 성격=복합유적 | 키워드=[[집자리]], [[돌널무덤]], [[팽이 토기]], [[미송리식 토기]], [[구덩식 화덕자리]], [[간 돌살촉]]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장호수 }} ==설명== 평양직할시 삼석구역 호남리 남경마을에 위치한다.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를 중심으로 [[신석기시대|신석기 시대]] 및 [[철기시대|철기 시대]]에 걸치는 복합 유적이다. 1979년에서 1981년 사이에 사회과학출판사에서 발굴 조사하여 청동기 시대 문화층에서 [[집자리|집자리]] 22기, [[돌널무덤|돌널무덤(石棺墓)]] 5기를 확인하였다. 유적은 5만㎡가 넘는 넓은 범위에 걸쳐 있다. 유적이 있는 곳에서 강을 따라 내려가면 대동강의 지류인 남강이 북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곳에 삼각주(三角洲)가 이루어져 있고 건너편에 [[평양금탄리유적|금탄리 유적]]이 있다. 집자리들은 서로 중복된 것이 있고, 출토 유물과 집자리 구조 등의 차이에 따라 세 시기로 나뉜다. 1기(期)의 집자리 7기(6·7·9·30·33·34·36호)는 동서방향을 장축으로 하는 평면 장방형 구조를 이루며 크기는 작은 편이다. 대부분 내부에 [[기둥구멍|기둥 구멍]]이 없으며, [[팽이토기|팽이 토기(角形土器)]]가 나오는 것이 특징이다. 2기의 집자리 9기(3~5·10~12·18~20호)는 남북방향으로 길게 놓여 있고, 내부에는 중앙에 기둥 구멍이 없이 벽면을 따라 통나무 기둥을 촘촘히 세운 것과 중앙에 장축방향을 따라 기둥 구멍을 3개 세우고 벽면에는 가는 기둥 구멍을 세운 것이 있다. 팽이 토기와 함께 [[미송리식토기|미송리식 토기]]가 나오는 것이 특징이다. 3기의 집자리 6기(1·2·8·13~15호)는 남북으로 장축방향을 두고 기둥 구멍의 배치 등은 2기의 것과 같으나 규모가 커졌고, 내부 바닥을 비스듬하게 하였는데, 북쪽을 조금 낮게 하여 축조하다가 나중에는 0.05~0.1m 높이로 완전히 단이 지게 하여 북쪽을 낮추었다. 팽이 토기가 주류를 이룬다. 세 시기의 집자리 대부분이 [[구덩식화덕자리|구덩식(竪穴式) 화덕 자리]]를 한쪽에 설치하고 있으나 11호는 [[돌두름식화덕자리|돌 두름식(圍石式) 화덕]]이 있다. 9호는 길이 6.6m, 너비 4m, 깊이 0.4m로 화덕은 한쪽에 치우쳐 위치한다. 바닥에는 짚 등을 깔았던 흔적이 보이나 기둥 구멍 흔적은 없다. 36호는 길이 8.8m, 너비 4.6m, 깊이 0.45m로 네 모서리에 기둥 구멍과 벽면 경계에 기둥 구멍이 촘촘히 있다. 중심선 북편 한쪽에 구덩식 화덕이 있고, 중앙에서 오곡(五穀)이 출토되었다. 11호는 길이 7.2m, 너비 4.15m, 깊이 0.45m로, 화덕은 중심선 북편 한쪽에 돌 2매가 잇대어져 있어 구덩이를 파고 돌두른 것으로 보인다. 기둥 구멍은 중심선을 따라 3개가 배치되고 벽면 경계를 따라 가는 기둥 구멍이 있다. 8호는 길이 8.8m, 너비 4.6m, 깊이 0.3~0.5m로 바닥은 비교적 평탄면을 이루나 북쪽이 0.15m 정도 더 낮다. 화덕 자리는 구덩식으로 북쪽 중앙에 위치하며, 벽 경계에 가는 통나무를 촘촘히 세우고 내부에도 정연성 없이 보조 기둥을 배치하였다. 특히 강돌을 둥글게 깔고 가장자리를 돌로 세워 시설한 것 2개가 바닥 중앙에 1열로 위치하는데, [[초석|주춧돌(礎石)]]의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추정한다. 15호는 길이 11.6m, 너비 5.7m, 깊이 0.3~0.35m 크기로 대형이며, 구덩식 화덕 2기가 돌 2매를 사이에 두고 연이어 위치한다. 기둥 구멍은 중심선을 따라 5개가 배치되고 벽 경계에도 확인된다. 유물은 집자리 내부에서 팽이 토기, 미송리식 토기와 함께 [[석기|석기]]류는 [[물고기모양반달돌칼|물고기 모양]] 및 [[배모양반달돌칼|배 모양(舟形) 반달 돌칼]], [[갈돌|갈돌(耉石棒)]] 등 농사일에 쓰는 도구들과 [[간돌살촉|간 돌살촉]], [[돌창|돌창(石槍)]] 편, [[돌도끼|돌도끼]], [[돌대팻날|돌대팻날(扁平片刃石斧)]], [[돌끌|돌끌(石鑿)]], [[별도끼|별도끼(星形石斧)]], [[그물추|그물추]] 등과 돌로 만든 [[가락바퀴|가락바퀴(紡錘車)]], [[돌돈|돌돈(石貨)]], [[발화석|발화석(發火石)]] 등이 출토되었다. 36호 집자리에서는 벼, 수수, 조, 기장, 콩 등 오곡 낟알이 나오고, 11호에서도 기장 낟알이 나왔다. 돌널무덤 1호는 길이 1.12m, 너비 0.52~0.57m로 바닥은 자갈돌을 1겹 깔고 그 위에 흙은 덮은 후 판돌(板石) 1매를 깔았다. 벽은 0.2~0.25m 내외의 판돌을 잇대어 축조하였으나 훼손이 심해 전체적인 양상을 알 수는 없다. [[껴묻거리|껴묻거리]]로 [[슴베간돌검|슴베 간 돌검(有莖式磨製石劍)]], 간 돌살촉 편, 미송리식 토기가 출토되었다. 3호는 길이 1.5m, 너비 0.45, 깊이 0.4m로 판돌을 이용하여 뚜껑돌(蓋石), 벽, 바닥을 마련하였다. 무덤의 껴묻거리로 미송리식 토기가 나와 호남리 남경 유적 청동기 시대 2기 집자리에 살던 주민들이 남긴 것으로 나타났다. 호남리 남경 유적 집자리의 구조상 시기 구분의 특징은 팽이 토기 집자리인 [[평양금탄리유적집자리|금탄리 집자리]], [[송림석탄리유적집자리|석탄리 집자리]]에서도 보여져 서로 간의 시기를 비교할 수 있는 자료이다.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치는 36호가 기원전 999±72년으로 확인되었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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